11. 신금봉 회장과 청암 클럽
1983년 10월 중순경, 당시 전두환 정권시절이었다. 사회정화 차원에서 서울과 지방을 막론하고 그 고장에서 돈 좀 벌었다는 사람을 부정축재자로 지목하여 재산의 일부를 사회에 환수 시키게 하였다.
당시 우리나라 신발업계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던 태화고무(말표 신발, 회장 신금봉 씨)가 정화 대상에서 지목되어 재산을 정리하는 중, 중앙로 YMCA 땅 바로 옆에 30평가량의 땅이 있어서 이 땅을 팔기 위해 김진수라는 담당과장을 은밀히 보냈다. 그는 춘천YMCA사무실을 찾아와서 YMCA에서 매입하기를 권했다. 사공 실장과 의논 끝에 춘천YMCA가 사겠다고 매입 의사를 밝혔다.
다음 날 본사로부터 결재가 나자 사공정 실장(중앙 장로교회 담임목사)은 파격적인 가격으로 합의를 보았다. 즉시 이사회가 회집되었다. 그러나 이사회에서는 지금 YMCA가 땅 살 형편이 안 된다는 이유로 부결되었다. 그러나 만약 Y가 못 사면 총무가 사겠다는 대안을 제시하여 조건부로 가결하고 계약금을 지불하였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태화고무는 당국에 재산을 신고하는 기한이 일주일 밖에 남지를 않았으므로 그 안에 잔금 처리가 되어야 한다는 연락을 해왔다.
춘천YMCA는 우리를 믿고 먼저 소유권 이전을 하면 약속대로 1개월 이내에 잔금을 치루겠다고 설득에 설득을 거듭했다. 어렵게 양해가 되어 소유권 이전 등기를 1980년 7월 25일 마쳤다.
등기를 마치자 김과장은 회장님 사모님도 권사이시고 나도 기독교인 이라고 하면서 회장댁 주소까지 친절하게 가리켜 주었다. 잔금 지불 날자가 지났지만 춘천YMCA에 돈이 있을 리 없었다. 본사에서는 전화가 빗발치듯 왔고 김 과장의 입장도 난감했다.
궁리 끝에 회장사모님이신 권사님을 뵙고 연기 부탁을 해보려고 김 총무와 사공 실장은 회장댁을 찾아갔다. 회장집은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궁궐 같은 호화 저택이었다. 성벽같이 높이 쌓은 담장만 보아도 저택의 호화로움을 금방 짐작 할 수가 있었다.
춘천YMCA는 그 땅을 기증 받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김과장은 사공실장이 맡고 중간 결재자인 신금봉 회장님의 사위되는 분과 회장님은 김 총무가 맡기로 했다 서울을 문턱 드나들 듯이 오가면서 끈질기게 찾아가 간청한 결과 3개월 만에 드디어 사위 분을 통해 기증하기로 결정을 내렸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중앙로 요지 (현 한국투자 신탁자리)의 땅 30평을 기증받게 된 것이다. 춘천YMCA에서는 그분의 고귀한 뜻을 기리고자 마침 새로이 조직한 청년 클럽 명을 신금봉 회장님의 아호인 청암이라 정했고, 그 후 국제 와이즈맨 청암 클럽으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게 된다. 그 땅은 그 후 한국 투자신탁에 매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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