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YMCA60년사(7)- 전문사역자 영입과 어린이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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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YMCA60년사(7)- 전문사역자 영입과 어린이Y

평화/Y

by 함께평화 2011. 7. 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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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전문사역자 영입과 어린이Y

 

춘천 YMCA는 전문사역자를 영입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하게 된다. 다음은 김홍규 총무의 회고담이다.


세월이 참 빠르다.

보따리 장사로 시작하여 춘천방송국에서 기증받은 중고 컨테이너박스를 위시하여 구 춘천시립도서관 3층 옥탑 4평 공간, 옥천동 폐허된 관청건물 한 구석을 두루 전전하면서 지내온 곁방살이 어언 9년. 돌이켜 생각해보면 지금도 서울역 지하도에서 기거하고 있는 노숙자들의 생활상이 가히 짐작된다. 다르다면 그들은 아무 의미를 지니지 못한 것 뿐이다.

그러나 주님과 함께하는 춘천 YMCA는 하나님께서 그냥 방치하시지 않음을 믿었다. 그러므로 오직 주님께 충성 외에는 안중에도 없었다.

1971년 2월경 본회 이사이며 내과병원을 운영하는 오성룡 박사께서 춘천에서 가장 중심지인 중앙로 로터리에 새로 지은 3층 건물 일부(36평)를 대여하여 주었다.

도청에서 정면으로 마주보이는 벽 위에 Young Men's Christian Association의 약자인 YMCA 간판을 대형으로 만들어 부착하니 보는 이마다 흐뭇한 미소와 박수를 보내주었다.

이제 YMCA에 전문 사역자가 필요한 때가 도래한 것이다. 이사회의 승인을 얻고 적임자를 물색 중, 효신교회 담임목사인 방지각 이사께서 당시 장로교 신학대학 졸업반이었던 사공 정 목사를 추천하였다. 훤칠한 키에 차분한 성품에다 예의 바른 매너가 첫인상에 돋보였다. 결과는 물론 합격이다. 직위는 프로그램 간사.

이때부터 춘천YMCA는 체계가 갖추어지기 시작했고,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되었다. 사공 간사가 부임하면서 그로 인해 YMCA는 온 시민의 매력의 대상이 되었다.

그 중에 어린이 Y의 조직은(1971. 8. 15.) 사공간사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전국 최초의 프로그램이었다. 이뿐만 아니라 같은 해에 58명이 참가한 어린이 캠프를 개최하였고 1972년에는 제주도와 교환 프로그램으로 조국 순례단을 조직하여 폭넓은 친교와 시야를 넓혀주기도 하였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였다. 모여드는 어린이들이 300명이나 되었다. 요즘 말로 하자면 대박이 터진 것이다.

어린이Y의 집회는 정기적으로 매주 토요일 1회, 어린이들은 토요일이 재미있는 선망의 날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딱딱한 학교생활과는 다르게 소프트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YMCA의 활동은 자기의 정체성을 찾는 재미있고 기쁘고 즐거운 날이기 때문이다.

사공간사 가족은 모두가 미술에 소질이 있었다. 그 중에서도 사공 간사는 삽화와 동화 그림 쪽에 재능이 있었다.

그 중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자기 이름으로 편지 한 장 받아보지 못한 어린이들에게 자신의 이름 석 자가 분명한 엽서가 매주 학교로 오고, 그것을 일일이 선생님께서 호명하며 받을 때에 어린이들의 마음은 가히 짐작이 된다. 그런데 엽서를 받으면 단순한 글씨의 소집 통지서가 아니다. 매주 바뀌는 귀엽고 재미있는 삽화에다 글씨체도 동글동글한 모양으로 이채로웠다.

어느 날 하루는 중앙초등학교의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거기에서 엽서 보내는 사람이 누구요?” 라고 묻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매주 바뀌는 삽화도 그러려니와 글씨 모양도 어린이에게 호감이 가는 글씨체”라고 하시면서 “요즘 학교는 학교 나름대로 바빠서 외부 일을 귀찮아하는데 YMCA에서 오는 엽서는 선생님들 모두가 기다려지는 매력 있는 엽서”라고 칭찬한다는 것이었다.

문뜩 떠오르는 생각이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구나 하고 YMCA에 가장 적임자를 보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러나 퍽 아쉬웠던 것은 정년 65세를 채우지 않고 근속 21년(1992년12월31일)만에 목회자로 떠났다.

다행히 사공 정 목사께서는 비록 현직에서 떠났으나 현재 부이사장으로 봉사하고 있으니 흐뭇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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