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고향, 태백이 보이더니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며 선후배들이 나타나면서 잠에서 깨었습니다.
무슨 의미의 꿈일까?
순간 태백 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걱정은 되었지만 새벽 시간이었기에 전화는 걸 수 없었습니다.
교회 새벽기도회에 가서 어머니의 건강을 위하여 기도를 했습니다.
지난주에 아내와 함께 어머니께 다녀왔고, 엊그제 어머니께 전화를 했을때 경로당 마실가셔서 동네 어르신들과 함께 즐거이 계셨기에 특별한 건강상의 의심은 들지 않았습니다. 다만, 몇년전 뇌경색으로 쓰러지셔서 거동하는 것이 불편하시고 혼자 계셨기에 자식으로서 걱정과 죄송스러운 마음을 갖고 있었기에 이 날 왠지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새벽기도회에 참석했던 것입니다.
오후에 태백에 계시는 형님으로부터 어머니께서 감기 기운이 있으시고 다른 건강검진을 위해서 병원에 입원하신다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어지간히 아프지 않고서는 자식들에게 병원가자는 말씀을 하지 않으시던 어머니가 특별히 이 날은 형님에게 "병원에 데려가 달라"는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이상했던 것은 시골집이라 왠간해서는 문을 잠그지 않으셨던 어머니가 이 날은 자물쇠로 문을 거시면서 "며칠 푹 쉬다가 병을 다 나아서 와야겠다"며 말씀 하더랍니다.
형으로부터 저녁 늦게 문자를 받았습니다.
입원하신 어머니가 갑작스런 호흡이상과 신부전 등으로 위급상태라 태백에서 원주 큰병원으로 이동중이라는 메세지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매주 목요일 고등검정고시반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다른 과목 선생님의 사정으로 시간을 바꿔 수요일에 수업을 하고 있어서 여러차례 전화를 해도 받지 않자 문자를 남겼던 것입니다.
아내에게서도 여러차례 전화가 걸려 왔었지만 무음 상태로 전환시켜 났기에 몰랐다가 수업이 끝나고 나서야 전화 확인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는 홍천으로 버스를 타고와 함께 원주로 가고 싶어 했으나 나와 연락이 안되어 막바로 춘천에서 원주로 버스를 타고 이동중이니 문자 확인하는데로 원주로 오라는 문자를 남겨 두었습니다.
어머니에 대해 별걱정 하지 않았는데 무슨 일이라도 일어났겠다 싶어 우선 황급하게 원주로 이동하였습니다. 가는 도중에 형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형은 "어머니가 입원중에 갑작스런 위급한 상황이 나타나 태백에서 구급차로 어머니를 모시고 원주기독병원으로 이동중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잠시뒤 전화가 걸려왔는데 "구급차가 태백을 벗어나기전에 어머니 상태가 더욱 악화되어 원주까지 이동하기에는 힘들것 같아 태백으로 되돌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원주로 가는 길에 어머니를 위한 간절한 기도를 했습니다. 갑작스런 어머니 위독 상태가 믿겨지지 않았고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형에게 전화를 다시 걸었습니다. 한참만에 전화를 받은 형은 "태백에서 어머니를 응급조치를 하여 조금 안정시킨 다음 다시 원주로 갈 것 같으니 원주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통화를 하고난 얼마의 시간도 지나지 않았을때 형은 전화상으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며 흐느끼며 "어머니가 돌아 가셨다"는 말을 하고서는 곧장 태백으로 오라는 황망한 말을 합니다.
어두운 밤이었지만 머릿속은 갑자기 하얗고 멍한 상태가 돼버렸습니다. 옆에 있던 아내에게도 뭐라 말해야 할지 몰라 그냥 울먹이며 말을 어렵게 이었습니다.
원주에서 태백으로 운전해 가는동안 마음으로는 빨리 가야하는데 하면서도 속도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머리와 발이 따로 놀고 있었습니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어떠한 감정도 정지된 상태였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장례
어머니는 몇년전부터 명절때나 형제들이 모였을때마다 "혹 당신이 어디 아프지 않고 죽었으면 좋겠다. 자식들 고생시키지 말고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했더랬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시더라도 화장을 해달라는 말을 하셨고, 17년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무덤을 개장하고 화장하여 합장시켜달라는 말씀을 했습니다. 그때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야지 자꾸만 그런 얘기를 하시느냐?"며 말을 잘라 버렸는데...
어머니는 당신의 말씀대로 자식들이 미처 걱정할 시간도 주지않고 스스로 죽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습니다.
3일전 태백에 있는 손주들이 보고 싶다며 함께 모여 삼겹살도 구워드시고, 경로당에서 이웃들과도 함께 식사하며 좋은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다른 형제들과도 전화통화하며 걱정하지 말라며 하시며 오히려 손주들 잘 성정하도록 격려도 하셨습니다.
장례를 치르는 어제는 봄기운이 화사한 날씨였지만 발인날은 새벽부터 구슬프게 비가 내렸습니다.
조문을 왔던 어떤이는 "발인날 비가 촉촉히 땅을 적시면 자식들에게 복을 끼친다"는 확인도 안되는 격려의 소리를 합니다. 갑작스런 어머니상이었기에 미처 주위분들에게도 연락을 못드린 분이 많았지만 어떻게 연락을 받았는지 발인 전날 새벽까지도 조문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장례를 치루면서 많은 분들의 위로와 격려가 힘이 되었습니다.
나 또한 다른 누군가의 경조사에는 반드시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20~30년만에 장례식장에서 얼굴을 대하는 친구, 선후배들도 있었는데 그때서야 새벽에 꾸었던 '꿈'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장례로 인하여 그동안 잊혀지고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태백 장례식장에서 볼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입관 예배를 주관하고 전날 저녁까지 조문까지 해 주셨던 춘천 사암교회 성도들,
발인 예배를 위하여 새벽 4시에 춘천을 출발하여 태백까지 와주신 목사님과 교우들께 너무 감사했습니다.
발인 예배를 드리고난 후 어머니가 사셨던 계산동 집으로 운구차가 이동하였습니다. 이 집은 내가 태어났던 바로 옆집입니다. 할머니와 부모님 그리고 5형제가 함께 살기에 너무 좁아 초등학교 3학년땐가 이곳으로 이사를 온 후 할머니, 아버지, 둘째형이 돌아가시고 나머지 형제들이 각기 원근각지로 따로 나가 살면서 어머니가 지금껏 지키며 살았던 집입니다.
큰 조카가 '어머니 영정사진'을 들고 앞장서고 형제들이 뒤따라 집 구석구석과 뒷밭을 천천히 돌았습니다.
어머니가 누우셨던 이부자리며 전날 입고 벗어놓으신 옷가지며 뒷밭에 심을 감자씨앗 등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들내미 왔는가?" 하며 어머니가 금방이라도 나타나실 것 같은데....
운구차가 계산동 집을 떠나 황지 화전사거리에서 태백화장장 가는길로 우회전하며 들어섭니다.
비탈진 산에는 하이얀 자작나무가 우산도 없이 두팔 벌려 어머니 가시는 길을 인도합니다.
삼수령을 넘으니 구슬피 내리던 비가 하얀눈되어 운구차 앞유리창에 끊임없이 와 닿습니다.
화장장에 들어서니 공원단지가 살포시 내려앉은 눈으로 인하여 온통 하얀 세상이 되었습니다.
화장장 벽쪽에 천상병 시인의 '歸天' 글귀가 걸려 있습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서 돌아가리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 하리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돌아가리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천상병의 시가 나를 위로 합니다.
슬픔도 없고 고통도 없고 아픔도 없는 본향으로 어머니는 화장터 굴뚝위로 하얀 연기되어 되돌아 가시고 계셨습니다.
1시간 반가량의 시간이 흐르니 어머니의 늙고 건강치 못한 육신이 하얀 재가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어떤 색을 좋아했는지를 물어본 적은 없지만 틀림없이 어머니는 하얀색을 좋아 하셨을 것 같습니다.
어머니, 안녕히 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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