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물지말고 흘러라/안젤름 그륀의 마음 순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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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지말고 흘러라/안젤름 그륀의 마음 순례기

평화/책

by 함께평화 2020. 10. 21.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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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지말고 흘러라

안젤름 그륀 l 21세기북스 출판

 

 

 

 

이 책은 유럽인들의 정신적 아버지이자 영혼의 인도자로, 그리고 지역과 종교를 뛰어넘어 많은 독자들에게 영혼에 깊은 울림을 주는 독일의 성자, 우리나라의 법정 스님 같은 안젤름 그륀신부의 잠언 에세이집입니다.

 

『머물지 말고 흘러라

이 책은 인생을 엮는 6가지 테마인 시작, 인연, 동경, 고통, , 다시 시작 즉, 시작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인연, 우리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동경, 인생에서 만나게 되는 고통, 힘든 하루의 일과를 벗어내고 몸과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잠시 바쁘게 달려온 길을 되돌아보게 하는 시간의 여유, 끝에서 다시 시작하는 마음가짐에 대하여 차분하게 안내해 주며 깊은 울림을 주는 책입니다.

 

이 책을 처음 접한게 벌써 10여년전이었는데 문득 이 가을에 다시 이 책을 꺼내봅니다.

차분히 마음을 내려놓고 삶을 돌아보며 글을 읽으며 힐링을 해봅니다.

마음에 와 닿는 글들을 다시 한번 남겨보며...

 

 

삶이 주는 즐거움만을 맛보려 해서는 안됩니다. 악함을 피하고 선함을 행하면서 삶의 즐거움을 찾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먼저 단념을 배워야 합니다. 단념은 내면의 자유로 가지 위한 금욕을 말합니다.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는 사람만이 환희를 맛볼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외부로부터 강요된 삶을 살고 있다면 우리의 기분은 정말 우울할 것입니다. p.27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매 순간을 음미하려고 하겠지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주의하면서, 신중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죽습니다. 그 사실을 왜곡하려고 하기 때문에 삶이 새로워지지 않는 것입니다... 매일 죽음을 생각합니다. 슬픈 얼굴로 세상을 달려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생을 음미하기 위해서 말이지요... 인생을 사는 즐거움을 느끼려면 죽음을 연습하십시오. 죽는 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인간답게 살 수 있습니다. 알찬 인생을 가꾸기 위해서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p.28

 

길을 떠나는 사람은 인생의 의의에 대해 묻습니다. 길을 가다가 도중에 서 있는 이유가 무엇이며,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끊임없이 묻습니다. 길을 ‘가는’ 우리의 목적지는 결코 내면의 세계가 아닙니다. 우리가 향해 가고 있는 곳은 마지막 은신처이자, 최후에 정착하게 될 고향입니다. p. 34

 

가까움과 멂, 사랑과 반감, 이해와 몰이해, 일체감과 고독은 서로 짝을 이룹니다. 이들이 서로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를 위해 결실을 맺습니다. 이중 하나만을 선택하면 실망과 환상에 빠져듭니다. 소통이 없는 우정은 친구를 더욱 멀어지게 만들 뿐입니다. 소통이 없다면 분열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됨과 분리됨, 가까움과 멂, 사랑과 반감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감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래야만 더욱 높은 차원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p. 62

 

지옥으로 가는 길은 좋은 결심으로 덮여 있다.- 몇 번씩이나 계획은 하지만 실행하지 못한다면, 그건 바로 지옥을 준비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 삶은 스스로를 멸망시키는 책망과 질책으로 가득하게 된다.

 

스스로 선택한 곳에서 뿌리를 내릴 때까지 어떤 일이든 지속하라.

 

죽음이란 신의 깊은 애정의 손이 어루만지고 있는 믿음의 모험입니다. 죽음은 매 순간을 집중하고 의식하며 살아가도록 합니다. 죽음은 신이 우리를 위해 영원한 미래를 준비하였다는 희망의 표현입니다.

 

현실적인 목표를 정하십시오. 어떠한 환상도 추구하지 않는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말이지요. 이를 위해서는 당신은 삶에 있어서 타협해야 하는 것을 파악해야 합니다. 남은 것은 온전히 그 일에 매달리는 겁니다, 만약 성공하지 못했다면, 너무 많은 일을 하려고 한 것이 아닌지 의심해 보아야 합니다. 그런 다음 그 전보다 더욱 현실적인 목표를 한번 더 정해 보십시오. 그리고 다시 그 일에 매달리는 겁니다. 당신의 인내에 대한 보답이 있을 것입니다. p.91

 

“결심은 삶 속의 무언가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우리를 방해하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다.“

 

사람들은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모험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실패를 각오하고 과감하게 뛰어들었을 때 비로소 돌파할 수 있습니다.

 

“싸우지 않고 승리하는 젊은이는 청소년기에 누를 최고의 것을 놓친 것이다. 또한 산 정상에서 계곡으로 흐르는 시냇물의 비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노인은 미라일뿐이다.그들은 자신의 삶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마치 기계와 같은 진부함을 반복한다.“- 융(C.G.Jung)

 

목표를 놓치면 노력은 두배가 됩니다. 목표를 마음에 두면 재촉하지 않으면서 일관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목표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공허함을 활동으로 가득 채웁니다. 왜냐하면 매우 많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이 의미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하염없이 바쁘기만 하지요.

 

“속도는 공허함을 불러들이고, 공허함은 조급함을 재촉한다.”

바쁘면 바쁠수록 그 사람의 내면에는 더욱 큰 공허함이 생깁니다. 그리고 공허함을 다시금 분주한 활동으로 채우려고 하지요. 이런 악순환만이 계속될 뿐입니다.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다른 삶이 주는 인생을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허용할 것 같은 자유주의 속에서 거대한 획일성을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신중함은 삶에 활력을 주는 정신적인 힘입니다. 신중할 때 비로소 양육된다는 느낌보다 살아간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삶을 환희로 가득한 비밀로 만들고 싶다면 매사에 신중해야 합니다.

 

신중함이라 ‘관심을 기울이다.’, ‘주의하다’,잘 생각하다‘, ’심사숙고하다‘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신중하다는 것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행동을 할때 모든 감각을 집중하십시오. 신중함은 바로 육체와 정신이 동일하게 활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중함으로 또다른 표현은 정신 집중입니다. 신중한 사람은 자신의 행동, 자신이 관계하는 대상, 그리고 매 순간마다 주의하고 심사숙고합니다. 조심성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경계하고 옹호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주변 분위기에 책임이 있습니다. 이는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무의식적으로 어떠한 편견에 치우쳤다면 우리는 자신의 생각부터 점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생각은 말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은 작은 생각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과감하게 행동하지 않으려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과오를 범하지 않으면 당신에게 새로운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진실한 사람이 주위에 있으면 숨을 수가 없습니다. 숨을 필요가 없지요. 만약 진실한 사람이 주위에 있다면 당신은 자신의 진실을 보여줄 용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무소유는 옛날부터 모든 종교에서 보이는 행동양식입니다. “무소유는 모든 것을 소유함이다.” 그 무엇에도 의존하지 않으면서, 심지어 타인이 의존하려는 것도 놓아줄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자유인입니다.

 

사람들은 홀로 있는 것은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홀로 있을 때 자신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홀로 있는 것 역시 축복일 수 있습니다. 홀로 고독할 때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의무와 희망 사이의 극단적인 양면성 사이에서 길을 모색해야 할때, 비로소 자신의 욕구에 대해 귀를 기울일 수 있습니다. 욕구에 귀 기울인다는 것은 균형을 이룬다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균형은 자신 안에 상충하고 있는 다양한 이해관계들 사이의 균형이며 공동체 혹은 전 세계 사람들 간에 대립하는 이해 관계들 사이에서의 균형입니다.

 

모든 문제를 피해만 다녀서는 결코 어떤 해결책도 찾을 수 없습니다. 비록 괴로운 일일지라도 참고 견뎌야 합니다. 인내하면 내면에서 서로 분리되었던 힘들이 다시 뭉칩니다. 그제야 당신은 중심을 다시 찾을 수 있습니다. 이제 남은 일은 불안의 원인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병이 들면 자신 안의 본성과 만나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인생에서 배제해왔던 것들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병이든다는 것은 자기 치유의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질병은 우리가 배제하려고 했던 것들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영혼의 붕괴로부터 우리를 보호합니다. 그러기에 병에 걸린다는 것도 긍정적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변명을 찾거나 남의 탓으로 돌리면서 죄를 무시한다면,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죄를 짓는 것은 자유를 누리기 때문입니다. 죄를 책임지고, 타인에게 죄를 미루려는 시도를 당장 멈추십시오, 이것이 영원한 자기 비하의 감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전제조건입니다. 만약 당신이 죄를 인정하면 사람들과 사이에 커다란 친밀감과 깊은 이해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평온하지 못한 것에 대해 불평하면서도 그 원인에 대해서는 더 이상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탐욕은 평온에서 멀어지게 합니다. 탐욕은 가진 것에 기뻐하지 않고 필요하지 않는 것을 끊임없이 바라보게 만듭니다...

 

원래 소유란 자신을 위한 평온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그것에 마음을 온통 빼앗겼을 때 사람들은 불안에 휩쌓입니다. 마음이 풍요롭지 못한 자가 외부에서 풍요를 추구합니다.

 

외적인 질서가 없는 사람은 내적으로도 무질서에 빠집니다. 의례를 무시하고 단순리 쾌감과 기분을 좇아 살게 되지요.

 

자신과 화해하고 싶다면 현재 모습에 동의해야 합니다. 우리를 모욕하는 것과 화해하는 길은 자존심을 상하게 했던 이들을 용서하는 겁니다. 그러나 이 용서의 과정은 꽤 오랜 시간을 필요합니다. 의지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용서가 없다면 화해도 없습니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과제는 자신과의 화해입니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신의 영광이 나 자신을 통과하여 빛을 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작할때는 모든 목표가 빛이 납니다. 그러나 목표를 이루고 성공적인 삶이 펼쳐질 거란 약속은 여운만 남길 뿐입니다. 그리고 그 여운은 현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그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사라집니다. 진정한 자유는 죽음에 대한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질 때입니다.

 

목표를 잃으면 매순간을 서두리며 즐길 수 없습니다. 휴가는 허락하다라는 단어에서 유래하였습니다. 휴가란 시간의 여유를 즐길 수 있도록 스스로에게 허락한다는 것입니다. 시간의 여유란 현실을 충분히 즐기면서 바쁘게 지내야 한다는 압박이 없는 상태입니다.

 

분주하다고 해서 실속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분주한 사람은 평온하고 냉정하게 일을 시작하는 사람보다 훨씬 효율적이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시간은 금입니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위해 가능한 많은 시간을 절약해야 합니다.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지요. 남아있는 시간으로 아무 일도 시작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바쁘게 서두르기만 합니다.

 

노래는 모든 슬픔을 몰아냅니다. 노래는 환희와 평화의 감정을 증가시켜서 내면의 불만을 치유합니다.

 

‘자아’란 결코 뒤바뀔 수 없는 내 이름으로 신에 의해 불리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아는 타인과 구분되는 것 이상이고, 의식하는 사람의 본질 이상이며, 내가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결과 그 이상인 것입니다. 그리고 ‘나’란 신이 나의 내면에서만 이야기해주는 단어입니다.

 

기도라 함은 가장 깊은 비밀의 장소에서 내 마음속에서 나에게 말을 건네고 당신의 생각을 털어 놓으시는 신과 대면하는 것입니다.

 

강한 자아만이 단념할 수 있습니다. 강한 자아는 자숙하며 자신을 강하게 채찍질합니다. 모든 것을 단념할 수 있을 때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수많은 것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을 자랑스러원 하십시오.

 

육체는 존재를 위한 통로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본능에만 충실한 자는 육체를 올바로 대하지 못합니다. 육체와 영혼의 조화는 마음속의 가장 깊은 동경에 따라 좌우됩니다.

 

영혼의 배고픔은 사랑과 사랑받는 존재, 즉 충족과 만족을 향한 동경으로서의 배고픔입니다.

 

텅빈 손을 신에게 내밀면 우리는 완전한 자유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는 모든 공명심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이며, 모든 자기 질책으로부터의 자유로움입니다. 또한 스스로를 압박한 것으로부터의 자유로움입니다.

 

신비주의자들은 “영생은 신을 영원히 즐기는 것에 있다”고 합니다. ‘프뤼 데오, 즉 신을 즐기는 것’은 우리의 목표입니다.

 

말은 침묵에서 오며, 침묵에 의해 순화됩니다.

 

자유의지란 하고 싶은 것과 해서는 안 되는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히 가질 수도 있는 수많은 것들도 완전하게 단념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 이유는 엄격해서가 아니라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자유롭지 않은 자는 체념하고 외부의 결정에 따릅니다. 결국 목적없이 인생은 표류하지요.

 

독일어 ‘고요한 still'이란 단어는 ’세워두다‘, ’움직이지 않고 서 있다.‘로부터 유래된 말입니다. 이는 고요해지기 위해서는 중단이 필요하다는 걸 의미합니다.

 

우리는 신을 만나기 위해서 기도를 합니다. 물론 그 기도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털어놓는 것입니다.

 

기도는 나로부터 독립된 존재와의 만남입니다. 이는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능력은 신과 대면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기도는 자신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자기 자신만을 보는 사람은 본질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측면들을 보지 못합니다. 기도로서 신을 보십시오. 그러면 신을 통해 당신 자신을 응시할 수 있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마음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과감하게 자신에게 제공된 기회를 잡을 줄 압니다. 현명하다는 건 지식을 현실에 적합한 행동으로 바꾸는 이성입니다.

 

평온은 매 순간을 신중하게 살아가는 자의 것입니다. 신중함이 불안을 변화시킵니다. 불안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그 불안을 있는 그대로 두십시오. 그러면 불안은 더 이상 간섭하지 못합니다. 불안은 강력하게 대항할 때 더 강력해집니다.

 

인생에는 목표가 있습니다. 청소년기의 목표는 세상에 적응하여 무언가를 달성하는 것입니다. 중년이 되면서 그 목표는 변하지요. 하지만 목표란 정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등반이 시작되는 계곡에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점은 그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입니다. 목표를 잃고 삶에 집착하는 사람은 정신적 성장과 육체적 성장이 조화를 이루지 못합니다.

인생은 자신의 삶을 살고자 하는 노력을 통해 완성됩니다. 따라서 자신의 소질을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의 울림에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은 당신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내 삶이 번영할 것인지를 내면의 울림을 통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더욱 잘 알기 위해서는 자신의 육체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때 자기인식을 위한 네 가지 근원이 있습니다. 첫째, 생각과 감정 둘째, 우리의 꿈이며, 셋째는 영혼을 표현하는 우리의 육체이며, 넷째는 태도와 습관 그리고 일을 나타내는 행동영역입니다. 이 네가지 영역을 모두 직관할 수 있을때 우리가 처한 상황이 어떤지를 실제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진실한 사람은 항상 자유롭습니다. 왜냐하면 진실만이 우리를 자유롭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진실을 피해가는 이유는 마음의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기가 두렵기 때문입니다.

 

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뜻으로만 자유를 이해하는 사람은 소원에 매달려 사는 사람입니다. 자유의 진정한 의미는 자신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타인을 위해 노력하고 일에 몰두하며 인간에 대한 봉사를 통해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고서는 자유를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바꿀 수 없다면 사랑하라 change it or lov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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