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사람책- 김건섭(열린문고 대표)... 홍천에서 유일한 서점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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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사람책- 김건섭(열린문고 대표)... 홍천에서 유일한 서점 운영

평화/책

by 함께평화 2020. 7. 22.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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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섭 대표.. 홍천에서 하나밖에 없는 서점을 운영하고 계시다.

<7월 사람책>

꿈은 이루어진다

 

김건섭 (열린문고)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부모님 세대들은 굉장히 어려운 상황 속에서 시대를 보냈습니다. 자신들은 어렵게 살았기 때문에 자식들은 잘 가르쳐야겠다.’ 생각해서 초등학교 5학년 때 춘천으로 전학을 가게 되었지요. 나와 동생을 돌봐주기 위해 이모가 춘천으로 이사 오셨습니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돈 걱정하지 말라고 자주 말씀하셔서 집이 굉장히 잘 사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자신을 위해 희생하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서, 부모님이 시골에서 농사해서 번 돈으로 나 자신이 호의호식하는 것이다 생각하니 부담감이 컸습니다. 그래서 유년시절에 이러한 이유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이후 책임감이 커졌습니다.

 

부모님께서 많은 지원을 해주셨지만 대학에 붙지 못해 재수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원했던 대학, 학과를 가지 못했습니다. 이후 군대 가기 전에 대학교 자퇴를 하였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께서 큰 아들은 교사, 작은 아들은 아나운서나 기자가 되라고 지속적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군 생활 이후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다녔습니다.

 

80년대에 많은 교사들이 해직되었다가 내가 졸업할 때쯤 다시 복직을 하게 되어서 임용고시로 교사를 뽑는 인원수가 매우 줄었습니다. 그래서 그 해에는 포기를 하였고, 임용고시 준비를 위해 서울로 올라가 노량진 고시촌에서 공부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임용고시로 교사를 채용하는 인원수가 늘지 않았기에 사범대학 학생들이 교직의 꿈을 포기하고 다른 길로 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나 같은 경우에도 교직의 꿈을 포기하고 출판의 길을 가게 되었는데 인터넷이 많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절 천리안이라는 사이트에서 중앙교육입시 연구원 구직 광고가 떠서 수학교육연구원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할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경희대 앞 휘경동 쪽 지하 단칸방에 하숙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경희대학교 대학원에 입학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회사생활과 공부를 함께 하다 보니 공부에 집중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대학원도 포기하고 회사에 올인하게 되었지요. 처음에는 수학 연구원, 입시상담 이런 일들을 하게 되었는데 전국에 있는 다양한 대학교, 고등학교를 방문하면서 세상이 정말 넓었고 내가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라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출판과 관련한 큰일을 해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정말 열심히 일을 했고, 나중에는 회사에서 마케팅 총괄을 하는 역할로 승진했습니다.

 

회사에서 마케팅 기획을 했는데 이 회사는 학습지 회사였습니다. 지금과 달리 그 당시에는 온라인, 동영상, 기타 등등 매체 자료가 발달하지 않아 학습지 회원이 30만에서 40만 정도로 많았고 연간 매출 또한 어마어마하게 높았습니다. 그 학습지는 고3 학생은 매주 학습지가 발송되는 시스템, 고등학교 1, 2학년은 격주로 학습지가 발송되는 시스템이었습니다. 대부분 학습지는 통째로 묶여 있는 반면에, 이 학습지는 파트별로 나누어 공부할 수 있고 입시 트렌드에 맞춰 다양하게 학습을 제공해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상담실에서 하는 일들은 논술 피드백 같은 일을 해주기도 하고 고민상담, 입시상담과 같은 여러 일들을 해주었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온라인으로 이런 것들을 다 해결했지만 그 당시에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전국에 있는 고등학교를 방문하여 학생들이 원하는 대학, 학과를 탐방시켜 주는 일을 했습니다.

 

내가 회사생활을 할 때도 홍천고등학교, 홍천여자고등학교도 있었습니다. 특히, 나는 이 지역이었기 때문에 홍천과 춘천 고등학생들에 대한 애정이 많았습니다. 그때 당시만 해도 각 대학교에는 홍보자료가 많이 없었습니다. 단순히, 페이퍼(종이) 홍보 집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 점이 내가 일했던 회사와 학교가 잘 맞을 수 있는 이유였습니다. 각 고등학교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우리 회사를 통해 좋은 대학교를 방문하기도 하고, 학생들은 여러 학교를 방문하면서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으니까 그야말로 일거양득이었습니다.

 

이러한 활동을 4~5년 정도 했습니다. 특히, 지금으로부터 한 22~23년 전에 학생들의 눈망울을 보면서 홍천에 대한 애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일을 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시기가 변하면서 입시제도가 바뀌었고 수시가 확대되고 교육부에서는 국가에서 정한 교육매체인 EBS를 내세우게 되었습니다. 반면 일반 출판사에서는 교육과정의 변화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문제 한 문제를 만드는데 수학 같은 경우에 그 당시에도 4~7만 원정도의 원고료가 지불되는데, 공교육인 EBS는 이를 원고료 없이 무단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출판사들이 연이어 도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다닌 회사는 도산까지는 아니었지만 코스닥 상장에 M&A(기업의 인수·합병)를 하게 되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게다가 나중에 알고 보니 M&A 대상자가 기업 사기꾼이었습니다. 학습지 회사를 인수하여 자신의 비용을 처리하고, 나머지 직원들은 퇴직금을 못 받고, 그리고 퇴직금을 가지고 또 회사를 인수하는 아픈 경험을 했습니다.

 

아픈 시기를 보내다가 내가 직원들을 어떻게 출판의 역할을 하게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 당시에 전국 직영지사가 있었습니다. 춘천에도 직영지사가 있어서 여기에 서점을 붙여 만들면 나머지 직원들이 먹고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각 직영지사 쪽에 서점을 전부 개점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각 직원들이 자기 수익은 자기가 가져가는 독립채산제의 형태로 또, 그에 대한 부담비용은 퇴직금을 담보로 하여 지원해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춘천에도 열린 문고가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출판에 있어서 학습지 같은 경우에는, 예를 들어 자이스토리같은 것은 학습지 단양 본이라고 합니다. 수경 출판사의 자이스토리를 직접 출판하게 되는데 돈 10원 한 푼 없이 대전 유성에서 사업설명회를 해서 5억이라는 큰돈을 투자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파이널 8절 마무리학습지를 수능을 100일 앞당겨 풀어볼 수 있는 5회 분량의 학습지를 만들어냈습니다.

 

예전에 선영아 사랑합니다.’와 같은 마케팅처럼, 우리도 강남 대치동 명강사 8인이 온다.’라는 마케팅도 했습니다. 이게 50~60만 권 이상이 판매되었습니다. 이걸 보고 전국의 투자자들이 더 투자해주었습니다. 이 투자금을 받아 자이스토리를 판매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자이스토리첫 해 출간은 실패를 하게 되었습니다. 오 개념도 기출문제이다 보니 일반 판형을 했는데 너무 두꺼워 아이들이 보기도 전에 질려버려 실패를 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다음에는 변형 판형인 큰 책자로 만들어 한눈에 보기 좋게 출간했습니다. 이게 시장에서 대박이 나게 되었습니다. 내가 출판을 한 경험 중에서는 실패 없이 잘 진행된 경험이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지역에서 고향으로 다시 내려와야 한다는 마음과 부모님을 모셔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자본을 얻어 춘천, 홍천에 열린 문고서점에 투자를 했습니다. 대부분 춘천 열린 문고가 메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홍천 열린 문고가 메인입니다. 나에게 춘천 열린 문고는 홍천을 위한 네트워크망에서 중간 거점 망입니다. 춘천은 모든 물류나 정보들이 홍천보다 빨리 왔기 때문에 이를 기점으로 홍천 열린 문고를 통해 학생들이나 독자들에게 부족한 부분들을 가져오는 매개체였습니다.

 

그리고 춘천 열린 문고는 사실 적자였습니다. 5~10퍼센트 정도 적자였지요. 그래서 직원들에게 내가 10퍼센트의 지원을 해줄 테니 잘 운영해봐라.”라고 말했고 그렇게 운영해왔습니다. 그런데, 재작년에 이마트 체인점에서 그 자리가 좋다고 건물주에게 열린 문고를 내보내면 얼마를 더 올려주겠다는 요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건물주가 나에게 권리금을 줄 테니 나가면 안 되겠냐 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서점이라는 장소는 이 지역 사람의 애환이고 홍천도 그렇지만 춘천 열린 문고는 그 주변에 사는 많은 맞벌이 부부들의 아이들이 만나는 만남의 장소, 돌봄 장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예전에 추적 60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춘천 열린 문고를 촬영했는데, ‘아이들을 해치려는 사람이 있을 때 어떻게 할까?’ ‘먼저, 112에 석사 지구대에 전화하고, 한 사람은 아이를 보호한다.’는 정해진 원칙대로, 직원들이 너무 성실하게 대처하는 것이 그대로 방송에 나온 적 있었습니다. 그 후 다양한 방송사에서 인터뷰를 해오는 결과도 가져왔습니다.

이처럼 춘천 열린 문고는 지역 서점으로서 긍정적 역할을 충실히 했고, 이를 증명하기까지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폐점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지역 시민들이 이마트 측과 건물주에게 엄청난 항의를 했습니다. 그리고 1년 반 동안 그 자리에 이마트는 들어오지 못했고, 공실이 생겼습니다. 살면서 개인사업의 폐점을 한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새 서가들을 그냥 버리기가 너무 아까워 11사단과 3기갑 담당자분들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그 서가들은 현재 11사단과 3기갑 병영도서관에 모두 들어가 있습니다. 그나마 위안을 가질 수 있는 서점이었고, 춘천 열린 문고는 그러한 소명을 다했습니다.

그 후 서울에서의 출판일, 춘천의 열린 문고 폐점을 하고, 이제 남은 건 홍천입니다. 그리고 홍천에 와서 살 계획으로 2년 전에 온 가족이 홍천으로 이사 왔습니다. 이제 홍천 군민이 되니 더 떳떳하고 자랑스럽습니다.

내가 만약 서울에 집이 있고 서울 사람이었다면 조금 주눅 들고 죄송한 마음을 가졌을 텐데, 지금은 너무 자랑스럽게 연봉에 살면서 서점으로 아침에 걸어오는 게 너무 씩씩하고 즐겁습니다. 그리고 주민들, 독자들을 만나는 것도 너무 좋습니다. 나의 모든 것은 홍천 열린 문고라고 할 수 있고 아마 평생 있을 것입니다. 아마 이곳에서 많은 일들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니 서점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서점은 책만 파는 곳이 아닙니다. 서점을 공부하면서 일본을 많이 갔다 왔는데, 서점은 문화를 파는 곳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서점은 그 안에 모든 혼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서점에 오면 여러 가지 문화나 각자의 생각들을 공유하는 곳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일본의 어느 시골에 있는 서점을 가봤더니 뒷문을 열면 논으로 가득한데 서점은 너무 훌륭하였습니다. 인구는 7~8만 정도였는데 정말 큰 서점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그런데 독서 인구는 우리나라와 비교가 안 됩니다. 그 시골 서점에는 방들이 쭉 있었습니다. 어떤 방은 뜨개질 모임을 하고, 어떤 방은 독서모임을 하고 있고, 어떤 곳은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임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도 저런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홍천 열린 문고를 처음 오픈할 때, 리모델링하여 전국에 하나밖에 없는 박물관 같은 서점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어 현재로선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3년 전부터는 매장의 변화가 거의 없습니다. 지금도 고민을 하고 있지만 2층을 리모델링하면서 일본의 서점을 벤치마킹하게 되었는데, 작은 공간을 만들어서 지역 주민들이 와서 편안하게 할 수 있게끔 했습니다.

 

처음에는 매주 목요일마다 유모차 부대가 와서 아이들 동화책을 읽어주는 모임도 있었고 독서 모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미나실에서 한 원어민 선생님이 아이들을 과외하면서 이익을 취한 적이 있었는데, 나는 그 선생님에게 우리 지역을 위해서 영어 회화를 가르쳐줄 수 있겠냐.’라고 하여 지금은 5개의 영어 동아리가 생겼습니다. 굉장히 활발하게 진해되고 있습니다. 화요일 동아리는 8~9년 정도를 활동해오고 있습니다.

 

홍천 열린 문고 2층은 일본에서 벤치마킹을 했지만 굉장히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이 자리가 마련되었을 때, 처음에 나는 반대를 했었습니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는데 결과물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 갤러리를 가면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열린 문고에서 책을 보면서 편안하게 그림을 보면 관심이 가고 아이들의 생각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전시회를 하고 싶었습니다. 작가님을 초대하고 액자, 그림물감 값을 다 지원했는데 작가님이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작은 음악회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일을 진행하려면 직원이 필요한데 열린 문고는 직원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이를 진행하지 못했지요. 그리고 또 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은데 올 하반기 같은 경우에는 지역 작가들을 위한 코너가 만들어질 예정이고, 지금은 일부 책들이 있고, 판매되는 좋은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열린 문고는 꿈의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꿈· 희망·자신감이라는 3가지 키워드를 좋아합니다. 자신감이 있으면 꿈과 희망을 다 채울 수 있기 때문에 자신감의 공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저녁때 서점에 오는 아이들은 풀이 죽어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친구들에게 좋은 이야기를 해주거나 힘이 되는 말을 해주고 옆에 과일이나 음료수 같은 것도 있으면 고생했다면서 건네줍니다. 그 순간, 아이의 표정은 화색이 돕니다. 그런 게 즐거움입니다. 나는 보잘것없지만 내 말 한마디가 저 친구에게 큰 힘이 되었으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여기 앉아 있는 저 선생님도 책을 보러 오는 것이 기억이 납니다. 책을 많이 보러 오는 사람들의 얼굴은 잘 기억납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히려고 서점에 자주 데려오는 부모님은 산교육을 시키지 않나 생각이 들기도 하고 만약, 그 부모님의 아이들이 말을 안 들으면 나를 찾아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부모님이 열심히 키우려고 노력한 것을 내가 직접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열린 문고는 애환이 있고 꿈, 희망, 자신감을 가져갈 수 있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해야 할 부분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이제 이러한 공간에서 꿈 이음대표님을 만났지만 독서 운동회 같은 행사나 여러 부분들을 나누고 홍보를 하고, 독서문화 활성화를 위하여 대표님과 열심히 활동하겠습니다.

청소년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예전에 홍천여자고등학교 학생 중에 주말만 되면 서울의 국립도서관을 가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도서관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공부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그 친구도 어렸을 때부터 봐왔던 친구였습니다. 굉장히 활발했던 친구였습니다. 나는 김 난도교수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을 좋아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왜 아프니까 청춘이야?’ 하지만 종이를 던질 때 구겨야 나가지 곱게 펴진 종이는 멀리 나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프니까 청춘인 것을 느꼈습니다.

누구나 다 본인이 결과물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꼭 확인을 받으려 합니다. 결국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본인입니다. 내가 아픈 곳을 여러 사람들에게 많이 털려봐야 합니다. 내가 해소되는 것이 생기면서 결과를 수정하고 방향을 바꿀 것입니다. 사춘기 시절에 많이 아파하는 것도 하나의 결과물로서 좋게 나타날 것입니다.

 

좀 더 큰 꿈을 가지고 세상을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수경 출판사에서 일할 때, 대치동 사거리에 있었는데 사업을 하면서 지역의 환경을 잘 알고 있는데 그곳은 전국에서 학생들이 몰려드는 곳입니다. 우리나라 교육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교육 같은 경우는 초등학교, 중학교 입학시험이 없는데 고등학교, 대학은 존재합니다. 초등학교 중학교에서부터 경쟁으로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살아가려면 대학이라는 구조가 있기 때문에 어차피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행하는 부분이 있다면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살려면 숙명이지 않나 싶습니다.

 

요즘에는 강원도에서 강원대학교 가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공대를 가는 학생들은 미적분이나 화학 물리 같은 것들을 잘해야 하는데 못하면 대학 가서 다시 공부를 해야 합니다. 나는 그런 경우를 봤습니다. 대학교 공대를 간 아이가 서점에서 완자 물리 2’를 사 갖고 갑니다.

내가 꿈이 있다면 학교 다닐 때 어차피 해야 합니다. 그러니 꿈이 있다면 학교 다닐 때 해야 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행을 많이 가보는 것을 권하고 여행을 가면서 전국에 있는 도서관을 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대치동을 가보면서 어차피 해야 할 부분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부족했던 부분들을 정말로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을 깨닫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아파하면서 수렴해야 자기 목표하는 꿈대로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말을 매우 좋아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꿈꾼 것이 항상 이루어졌다고 봅니다. 실패한 적도 있었지만 성공이 더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꿈을 가지면 꼭 이루어진다고 봅니다. 자기의 의식 속에서 그런 생각들을 계속하게 되면 그런 의식을 쫓아가지 않을까 싶고 꿈과 목표는 더 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친구들은 아마 큰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지금 많이 아프지만 그 꿈을 위해서 좀 더 내 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가지고 열심히 한다면 꼭 목표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홍천 주민, 아이들을 너무 사랑하고 여기 오신 분들 정말로 가슴으로 사랑하고 이 사랑하는 마음 변치 않도록 열린 문고를 열심히 운영해서 정말로 빛날 수 있도록 그리고 지역사회의 큰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Q. 대표님께서 서점에 애착이 있으시듯이 홍천고등학교 도서부인 저도 홍천고등학교 도서관에 대한 애착이 강합니다. 하고 싶은 것은 많으나 학교에서의 지원이 적은데 올해 꿈 이음대표님께서 작가 초청 기회로 지원해주실 수 있다 하셔서, 홍천고 독서 문화도 증진되었으면 하는 바람인데, 나중에라도 학생들이 필요하실 때 홍여고 학생들도 좋지만 홍천고 도서관 운영부 친구들에게도 독서 문화와 관련된 기회를 주실 의향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적극적으로 하겠습니다. 책도 좋지만 상품권도 상품으로 내놓을 수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초등학교 가서 학교에 도서관이나 기타 등등 상품권을 기증했더니 법에 접촉이 되더라고요. 그러나 도서부 친구들에게 주는 것은 불법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Q. 형식 이야기가 나와서 그러는데 저는 사실 재작년인가 서울 노원 쪽에 갔을 때 지구 불시착이라는 서점을 갔었습니다. 그곳은 동네 책방인데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는 곳입니다. 제가 청소년들을 자주 만나다 보니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들, 글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그런 것들을 아이들이 만들다 보면 서점 코너에 지역 작가님들과 더불어 지역 사람들 누구나 만든 책을 천 원이나 천오백 원 정도에 팔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A. . 하겠습니다. 홍천에 시인이 한분 계시는데 제가 유통을 잠깐 설명해드릴게요. 출판을 하면 중간의 유통이 있습니다. 많은 책들을 전국에 각 서점으로 보내주는 것인데 그 시인도 책을 가져오셨습니다. 소위 말해서 우리 서점은 대부분의 책의 매입 율 70퍼센트 중에 10퍼센트를 적립해주는데 그 선생님은 90퍼센트로 매입하고 10퍼센트는 독자들에게 할인을 해주고 90퍼센트는 전부 그분께 드렸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우리 친구들이 다양한 능력들이 있으면 열린 문고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해드릴 수 있습니다.

열린 문고는 넓잖아요. 할 게 많습니다. 다 해드릴 수 있습니다. 이젤이나 여러 가지 부분들도 할 수 있기도 합니다. 매장 입구에 공간을 마련하려고도 했었는데, 이번에 기회가 된다면 책과 책 사이 공간들이나 여러 빈 공간들, 독자들이 자주 보는 공간 쪽에 할 의향이 있습니다.

 

Q. 저는 농사도 짓고 판매를 하는데요. 경영과 관련된 질문이 곤란하시지 않으시다면 여쭤보고 싶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주로 통신 판매를 하다 보니까 매출이 홍천 지역을 벗어나서 일어나는데 서점 같은 경우는 완전히 지역기반으로 일어나는 것이잖아요.

15년 넘게 운영하셨는데 홍천 인구가 통계적으로 크게 변하지 않았는데 그동안 양적인 추이가 궁금합니다. 그리고 또 그 안에서 매출이 일어나는 체계의 종류나 질적 운영에 대한 생각이 어떠하신지 궁금합니다.

 

A. 실질적인 매출은 매년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서점의 실질적인 매출은 지역주민들도 있지만 주 매출 층은 군인 분들입니다. 15년 전에는 1개 사단이 더 있었습니다. 그게 지금은 없어졌고 이번에는 11사단이 바뀌면서 병사들이 없어진다고 합니다. 또한 요새 군인 용사들에게 핸드폰도 지급되다 보니까 책을 안 읽는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군 생활을 해보니까 사실 그 안에서 효율적으로 보낸다고 한다면 보낼 수 있죠. 공부를 열심히 한다든지, 책도 많이 읽는다고 한다든지 할 수 있는데, 이제는 책 읽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네요. 그러다 보니 매출은 점점 줄어들고 인구의 변화도 있습니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면도 있고 초등학생이 시험이 없어져 학습에 관심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몇몇 학부모님들은 학생들의 학업에 관심을 가지지만 특히 홍천 같은 경우는 많은 학부모님들이 학습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세요. 물론 공부가 다는 아니지만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기초를 다져 놓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나라 교육이 참 문제예요. 해야 할 부분은 학교에서 잘 가르쳐야 하는데 그게 잘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부모님들도 관심을 잘 가지지 않고, 관심을 가지는 학부모님들의 아이들에게는 기회가 되는 거죠. 이게 문제입니다. 점점 사교육으로 빠지고 있고 매출은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아마 올해도 매출은 계속 줄어들 겁니다.

저도 요즘 고민이 많아요. 매출이 줄고 사람도 줄고, 하지만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추진할 인원이 부족해지는 거죠. 요즘은 책들을 춘천을 통해서 받습니다. 그런데 그쪽도 상황이 좋지 않으니 제가 직접 받으러 가기도 한답니다.

홍천은 특히 책의 단양본 형태가 많은데 아이들보다 군인 용사들이 많이 가져간답니다. 그분들의 독서량은 만만치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분들을 위주로 진열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요즘에는 인터넷이 잘 발달하다 보니 나의 주관적인 생각을 떠나서 유행하는 책을 선정하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이번 하반기부터는 바꿀 예정인데, 중간에 큰 서가 매대를 없애고 큰 테이블을 놓아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을 두고, 2층도 매대를 없애고 학습할 수 있는 공간을 두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부 인테리어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바깥 공간에 오카리나와 같은 악기 연주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생각 중입니다.

 

Q. 저도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사람들이 영상매체를 선호하다 보니 독서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는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모델을 변화하는 것으로 예를 들어, 카페 형태라든지 굿즈를 판매한다든가 하는 구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실질적으로 제가 리모델링을 했더라면 그와 같은 모델이었을 겁니다. 책이 많다고 해서 많이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 양질의 책이 있고 서점에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홍천의 지역적인 위치, 주차 조건과 같은 환경들이 많이 열약합니다.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다양한 콘텐츠를 판매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농산물 같은 상품 판매도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그게 나한테 득이 안 되더라도 우리 지역 주민들이 열린 문고를 통해서 공유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저는 만족합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서점에 그런 형태를 마련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소감 1

학교에서 토론을 나가 본 적이 있는데 형식이 없다고 꾸짖음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토론을 볼 때 유시민 씨 같이 편안하게 토론을 진행하고, 작은 학교의 분위기 같이 가정적인 이야기 방식이 좋았습니다. 오늘 이 자리도 너무 형식적인 느낌이 아니라 편안한 분위기라서 너무 좋았습니다.

 

소감 2

다른 어떤 사람 책보다 꼭 시간을 내서라도 오고 싶은 사람책 분이셨습니다. 평상시에 아이들 책을 사러가든 문제집을 사러 가든 그때는 잠깐 봬서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계신지 궁금했었는데 오늘 이 자리를 통해 가치관이나 경험들을 자세히 알게 되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소감 3

저는 홍천여자중학교 도서부 부장인데 열린 문고 사장님이라고 하셔서 평범하실 거라 생각했는데 인생이 스펙터클 하신 거 같아 놀랐고 많이 배웠습니다. 청소년들을 위해 많이 지원해주시고 꿈, 희망, 자신감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좋은 말씀해주신 게 인상 깊었습니다. 오늘 저한테 굉장히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소감 4

열린 문고에 정말 많은 책이 있지만 오늘 제일 좋은 책을 들고 오신 거 같습니다. 저는 정말 홍천이 자랑스럽습니다. 홍천 사람이 정말 많은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데 또 문학, 출판 쪽에서도 이런 훌륭한 홍천 분이 계신 게 자랑스럽습니다. 이제 모든 것을 다 접고 고향으로 내려와서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기반을 만들어 주시고 끌고 나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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