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윤선도 유적지를 들른 후 강진으로 향했다.
윤선도 유적지는 당초 아내와의 단둘여행시 계획에 없었던 곳이지만 다산초당은 꼭 방문할 곳중의 하나였다.
윤선도 유적지에서 유물전시관을 천천히 둘러보고 비자나무숲에서 쉬다보니 조금 늦게 출발하느라 해가 저물기전에 강진에 도착하였다.
다산초당(茶山草堂)
해남에서 강진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다산초당(茶山草堂)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 사상가인 정약용(丁若鏞)이 1801년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귀양을 오면서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중 1808년에 윤규로(尹奎魯)의 산정이던 이 초당으로 처소를 옮겨 1818년 귀양에서 풀릴 때까지 10여 년간 생활하던 곳이다. 이곳에서 다산은 <목민심서> 등을 저술하고 실학을 집대성하게 되었으며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이름이 초당이라 하여 초가(草家) 정도라 생각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 조그맣고 마을과 동떨어진 곳에서 절망하지 않고 수많은 저서를 저술한 다산이 참 존경스럽다.
다산초당은 동암과 서암, 그리고 천일각으로 조성되었으며 사적 제107호(1963년1월21일)로 지정되어 있다.
" ‘茶山艸堂’이라는 현판은 김정희(金正喜)의 글씨로 유명하다. 그리고 천일각은 '하늘 끝 한 모퉁이'라는 뜻의 천애일각을 줄인 말로 다산 선생이 유배 당시에는 없었던 건물이었지만 정조가 흑산도에서 유배중인 다산의 형 정약전을 그리워하며 강진 앞바다를 바라보았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강진군에서 세웠다고 한다. 지금은 바다를 메워 간척한 땅이 되어 버렸다."는.. 가족단위 모임같은데.. 한 무리들을 이끌며 문화해설사(?) 로 보이는 분이 열강을 하시는 것을 귀동냥하며...
동암에서 천일각을 통해 백련사로 가는 길이 나있다. 유배생활 동안 벗이 되어주었던 백련사의 혜장선사와 다산 선생을 이어주는 통로로 800여미터 길에 이르는 길로서 야생차 군락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동백숲을 거닐 수가 있다.
백련사까지 걷고 싶었으나 날이 어둑해지고 다산수련관과 다산기념관을 들러서 차로 백련사까지 가면 될 것 같아 내려오게 되었다.
다산수련원
다산수련원은 광주YMCA에서 강진군으로부터 위탁운영한다는 소리를 듣고 혹여나 아는 분이 계실까 하고 전화도 없이 찾아 가봤는데 올해부터는 직영을 하고 있다고 하여 로비와 주변만 살펴보고 나왔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수련생들이 없어 한산하게 느껴졌다.
다산기념관
당초에는 다산수련원 부지내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올해 7월에 신축을 하여 다산 정약용의 18년 유배 흔적들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곳이다. 지어진지 얼마안되어 시설이 깨끗하고 잘 갖춰져 있었다. 다산의 삶과 업적들을 잘 정리하여 놓아 이해하기 좋았다..
백련사(白蓮寺)
다산기념관에서 5분여 차를 타고 백련사 주차장에 주차시켜놓고 동백나무숲을 지나 백련사에 오르는 길은 너무 좋았다.
백련사는 만덕산(408m)에 있으므로 만덕사(萬德寺)라고도 불리운다고 한다. 통일신라시대 말기인 839년 무염(無染) 스님이 창건하였고 사찰 이름을 만덕산 백련사라고 불렀으나 조선시대에는 '만덕사'로.. 그렇지만 근래에 다시 '백련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한다.
아내와의 단둘여행 세번째날 아침부터 해남 달마산 도솔암, 윤선도 유적지 그리고 강진의 다산초당.. 하루를 빡세게 보냈다. 해남과 강진을 마음에 담고 이제 여수로 향한다.
다산초당 오르는 길
동암이 보인다..
천일각
백련사 오르는 길.. 좌우로 동백나무가 빼곡하게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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