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여행’을 통해 돌아본 YMCA 20년
2012년 12월이 되면, 춘천YMCA에서 활동한지 만 20년이 그리고 사무총장직을 수행한지도 만 10년이 되는 때이다.
사무총장에 취임하던 2003년은 돌이켜보면 춘천YMCA로서는 여러면에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다. 이러한 위기와 어려움은 오히려 희망과 행복의 10년의 계획을 세우게 했으며 기도하도록 하였다. YMCA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으고 세우며, 열정적으로 즐겁게 활동을 펼칠 수 있도록 사업과 터전의 틀을 넓히고, 재정적으로 건실하게 뒷받침하며 생산적인 운영 체계를 세우는 것이 당시의 기도제목이었고 목표였다. 당시 무기력하게 남아있던 10여명의 실무자들은 반신반의 하면서도 나를 믿어주고 따라주면서 한 해 한 해 차츰 꿈꿨던 일들이 실현되어지는 모습을 확인하면서 함께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었다.
10년이 흐른 지금, 사무총장 취임부터 가족들과 실무자에게 나의 거취에 대한 계획을 밝혀 왔었고 지난 제주도에서 열린 AOS여름연수때 춘천YMCA 간사들이 거의 참석한 가운데 사무총장 임기만료와 이후의 내 진로에 대한 설명을 하였기에 큰 미련은 남지 않는다.
그 제주도에서 마침 10월 31일부터 11월 2일까지 시민실천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던 청정강원21실천협의회의 ‘실무자, 위원 워크숍’ 이 있었다. 워크숍을 마친 후 YMCA에서의 20년을 되돌아보며 새로운 10년을 계획하는 ‘나홀로여행’을 마음에 두고 준비를 하였다. 이미 1주일전에 후임 사무총장 내정에 대한 절차를 모두 마쳤기에 아주 홀가분한 마음으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나홀로여행 첫째날, 진실된 나의 모습과 만나고 싶다.
‘나홀로여행’은 3박4일간 제주에 머물면서 올레길 8~11코스, 그리고 가파도와 사려니 숲길을 걸어볼 계획이었다.
청정강원21 일행들과 헤어지고난후 제주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중문 우체국에서 하차 하였다. 올레8코스 시작점부터 걷기를 시작하려다가 그냥 하차 지점부터 걷기로 하였다. 나홀로여행이 좋은 것은 짜여진 일정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마음내키는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나홀로여행은 대학졸업후 처음이었다. 그동안 무엇 때문에 혼자만의 여유를 못 가졌을까? 어쩌면 YMCA나 가정일 등 내가 아니면 안굴러 간다는 착각과 집착, 스스로 짜놓은 형식과 틀, 남을 의식하며 무언가를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고 또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정받으려는 모습들이 그 이유는 아니었을까?
3박4일간의 짧은 나홀로 여행의 목적은 거짓없고 꾸밈없는 나의 모습을 만나고 대화하며, 그동안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내재해 있던 고민들을 다 내려놓고 자유와 평화를 누리며, 혹여라도 생전 처음 겪어볼 낯선 게스트하우스에서나 길에서 만나게 될 숱한 여행의 사연을 가진 또다른 누군가와 인생을 나누고, 앞으로의 10년을 멋지게 설계해보자는 등이었다. 이런저런 기대와 다짐들이 2kg도 채 안되는 작은 배낭 하나 달랑 등에 메고 나홀로여행길을 내딛는 첫발걸음에 함께 얹혀져 있었다.
처음 나의 눈길이 멈춘것은 바다였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 철썩거리는 파도소리는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었다. 앞뒤옆 산으로 꽉막힌 태백 탄광촌에 태어나 지역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고등학교 수학여행길에서 바라본 탁트인 바다는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하였었던 기억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짙푸른 하늘을 마음껏 날개짓하는 갈매기를 바라보며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 의 주인공인 조나단이 일상과 의존에서 벗어나 부단한 도전과 노력을 통하여 새로운 가치와 삶을 이루어가는 모습이 머리에 스쳐갔다. 지금은 어느 정도 춘천YMCA가 재정적으로 안정되었고 규모적으로도 확대되었기에 큰 부담없이 사무총장직을 계속 수행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새로운 변화와 인생의 도전을 위한 고민을 하는 내 모습이 마치 조나단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주위 사람들의 권유대로 한번 더 사무총장 임기연장을 한다면 어쩌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고 자리에 연연하였을 것 같다. 그렇게 된다면 그 임기후에 맞닥들일 새로운 변화에 대한 결단을 내리기는 지금처럼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게 지금의 솔직한 심정이다.
자유와 새로운 변화에 대한 선택을 배낭에 짊어지고 걷는 발걸음은 한결 가볍고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이내 등줄기로 흘러내리는 땀은 마치 나 자신을 격려하고 응원하는 토닥임으로 여겨졌다. 어느 순간 처음 발걸음을 내딛을때 보다 점차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음을 감지하였다. 땀으로 온몸을 흠뻑 젖어있는 상태에서 이런저런 여유롭게 떠올렸던 생각들도 점점 사라지고 있음도 느낄 수 있었다. 오후2시경에 출발하였는데 아무리 어릴적부터 걷기에는 자신했던 나였지만 오후 5시가 넘어가면서 급격히 기울어져 가는 해를 바라보며 도착예정지인 대평포구까지는 어떻하든 가야한다는 생각으로 점점 발걸음이 빨라졌던 것이다. 그렇게 잘 보이던 올레 표시도 잘 보이지 않고, 흔하게 보이던 민가들도 왠지 멀리 떨어져 있는 듯 싶어 혹여라도 길을 잃을지도, 숙박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과 조급증이 음습해 들어왔다.
다행히 4시간을 족히 걷고난 후에야 어둑해진 상태에서 대평포구에 다다랐다. 우연히 둥그런 돌위에 하얀 페인트로 표시된 "티벳풍경 게스트하우스” 연락처를 발견하고서는 전화를 걸어 입실 가능 여부와 위치를 물어 찾아 들어 갔다
난생 처음 "게스트하우스"를 경험하게 되었다. 주인으로부터 화장실과 샤워실, 조리실 등 이용 수칙을 안내 받고 숙소에 들어갔더니 이미 입실한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안보이고 베드위에 덩그러니 배낭들만 놓여 있었다. 배낭을 살펴보니 여성 것으로 보이는 배낭도 있기에 주인에게 물어보니 혼숙이라고 한다. 내 나이 40대 중반이지만 아직 잠자리가 변하면 잠을 잘 자지 못하는 타입이고 더욱이 혼숙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제대로 잘 수나 있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스마트폰을 통해 "티벳풍경 게스트하우스"를 검색해보았다. 여행 블로거들에게는 꽤나 알려진 곳이었다. 아마도 구석구석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이색적인 티벳풍 분위기와 그리고 여행을 좋아하는 주인의 여러 경험과 여행자들과의 편안한 나눔 자리가 있기에 좋은 평이 나있는 것 같았다. 밤늦도록 여행객들이 함께 둘러앉아 간단한 다과를 나누며 자연스레 노래와 이야기 마당이 펼쳐졌다. 서른 중반의 남성, 그는 결혼하여 6살된 아이도 있지만 16년간의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인생후반을 위하여 지난 5월부터 1년간 제주에 머무르면서 삶의 재충전과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비장한 눈으로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그리고 서른 초반의 결혼을 절대 말리겠다는 여성, 보기에 역마살이 낀 나이드신 여행자, 이직과 더불어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위해 온 젊은 남성, 마음을 치유하고자 함께 온 자매... 함께 둘러앉은 여행자들의 사연도 가지가지다. 밤늦도록 쏟아져 나오는 경험담은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삶의 경험이고 인생 배움터였다.
나홀로여행 둘째날, 목표지향적이 아닌 목적지향적인 삶을 살고 싶다.
산뜻하게 아침을 맞았다. 잠자리를 가리긴 해도 전날 워낙 피곤했던 탓에 정신없이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조금 일찍 일어나 마을 주변을 산책하고 게스트하우스에서 진한 커피한잔을 내렸다. 커피향을 맡으며 갓 구운 식빵에 잼을 바르고 계란후라이와 귤을 넣어 아침식사를 하면서 오늘 일정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 여행객들에게 고개 인사만하고 배낭을 꾸려 길을 나섰다. 오늘은 어제처럼 시간에 쫓기고 도착지점까지 어떻하든 가야한다는 마음보다는 자연과 더불어 자유롭고 여유롭게 길을 즐기며 자신과의 대화에 충실한 하루를 보내기로 하였다.
되돌아보면 그동안의 삶이 목적지향적이기보다는 목표지향적이고 성과지향적인 삶을 살았던 것 같다. 대학 졸업한 뒤 잘 다니던 직장 그만두고 Y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나 결혼할 당시 Y에서 일하면 먹고살기나 하겠냐며 은근슬쩍 처갓집에서의 결혼 반대의 모습이 떠올랐다. 대학 3학년때 일년간 유서를 써놓고 찾았던 삶의 목적과 가치는 어떠한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있게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삶의 동기였지만 사무총장이 되고난 후 책임과 과제가 분명해졌다. 특히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이직을 고민하는 실무자들을 보며 YMCA가 아무리 사명감을 갖고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일을 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경제적인 부분 때문에 이직을 고려하지 않을 정도의 구조는 만들어야겠다는 각오를 줄곧 하였던 것 같다. 실무자들의 처우를 높이고 일할 수 있는 터전도 늘리고 사업도 확장시켜 누구라도 YMCA에서 일하고 싶을 정도로 부러워할 수 있는 단체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프로젝트며 위탁운영이며 사업들을 YMCA 정신과 목적으로 합리화시키면서 실무자들을 이해시키고 비젼을 제시하며 확장시키는 일에 전념하였었다. 사무총장으로서의 처신도 달라졌다. 여러 면에서 모범을 보이려 애썼고, 어렵고 힘든 상황에 부딪쳤을때에도 앞장서서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극복해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노력들의 성과들이 감사하게도 10년전 YMCA와 비교한다면 재정적으로나 규모적으로 수십배로 성장할 수 있었으며 나 자신 또한 여러면에서 성장하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성장의 뒷면에 가려진 부족하고 미흡한 부분들도 많다. 무책임하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좀더 질적 발전과 YMCA목적에 충실한 과제들은 이미 후배들의 몫이라고 진작부터 이야기하였고, 나는 실무자 역량강화를 위한 교육과 새로운 활동에 대한 도전, 그리고 YMCA와 더불어 실현할 나의 꿈과 비젼을 추진하는데 남은 힘을 쏟을 생각에 사무총장직을 그만두는 것에 큰 부담없이 결정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대평포구에서 출발하여 몰질, 박수기정, 볼레낭길을 지나고 화순항까지의 8.8km의 올레 9코스는 8코스때보다는 한결 가볍게 즐기면서 여유있게 걸을 수 있었다. 길을 걷다보니 지난 밤에 만났던 사람들의 여러 사연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 코스를 먼저 지나간 사람들의 여러 사연의 흔적들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을 비우려고 애썼는지 모르겠지만 떠가는 구름의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고, 스치는 바람의 속삭임까지도 그리고 흩어져 있는 돌맹이 하나의 존재까지도 마음에 와 닿았다. 이름 모를 새소리에 화음 맞춰 노래 부르고, 여기저기 피어있는 꽃들로 부터 생명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으며, 낙엽의 흩날림 속에도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고보면 지금까지 생명력있게 전해오는 시와 음악을 지은 사람들 모두는 분명 자유와 여유로움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행복한 생활을 하였으리라 생각을 하게되었다. 어느새 나도 멋드러진 시인이요 음악가가 된다. 나의 걸음 걸음걸이와 등줄기로 흘러내리는 땀방울, 그리고 나의 한숨 한숨은 자연의 일부가 되고 모든 생물들과 더불어 자연의 소중한 존재들임을 깨닫는다.
언제 도착했는지도 모르게 9코스의 도착지인 화순항까지 이르렀다. 잠시 커피한잔의 여유를 즐긴뒤 올레10코스에 발걸음을 내딛었다. 10코스는 화순해수욕장을 출발하여 화순금모래해변, 산방산을 지나 용머리 해안, 송악산 둘레길, 알뜨르평야, 모슬포항까지의 약15km내내 산방산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코스였다.
전날 올레걷기축제에 많은 사람들이 걸어서인지 길 위에 흙먼지가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흙먼지에 묻어있는 수많은 사연과 상처들이 내 발길 닿아 흩어져 사라지듯 나의 과거가 내게는 소중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길을 만들고 흔적들을 만들 수 있기에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란 언제나 슬프거나 힘들지만은 않을 것이며 기쁘고 행복한 일이 있기에 살아갈 희망이 있음에 감사를 느낀다. YMCA 사무총장이 되기전까지 나의 생활신조는 “성실한 도전”이었다. 무엇에든 진실되고 성실한 자세로 목적을 이루겠다는 뜻에서 대학교 1학년때 만든 생활 기본원칙이었다. 사무총장이 된 이후로 그 생활신조가 “감사를 누리자”로 바뀌었다. 하나님께서 내게 부어주신 많은 은혜와 감사의 조건을 찾아 풍성히 누리겠다는 긍정적이고 행복한 삶의 원칙인 셈이다. 그러고보면 20여년간의 YMCA 생활은 내가 말한대로 생각한대로 뜻한대로 되었던 것 같아 놀랍다. 그렇기에 생각과 말을 조심하고 언제 어디서든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진실한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나의 작은 미력이나마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쳤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램이자 삶의 방향이 되었다.
먼저 지나간 사람들의 문제와 고민들이 말끔히 해결될 수 있기를 바라는 기도를 하면서 흙먼지 길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샌가 10코스 마지막지점인 모슬포항에 도착하였다.
아직 날도 밝고 시간의 여유가 있어 스마트폰으로 주변 게스트하우스를 검색하였다. 블로거들이 추천한 몇군데 게스트하우스에 전화했더니 이미 만원이었고 블로거들로부터 그렇게 평이 좋지는 않았지만 길 지나가다 발견한 '대정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곳은 식당을 개조하여 남녀 구분하여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하는 곳이다. 의외로 숙박비가 일만원으로 다른데 비하여 쌌다. 숙소에는 이미 배낭을 풀어 놓고 여유있게 책을 보고 있는 한 분이 밝게 환영인사를 하였다. 그분과는 저녁식사와 막걸리를 한잔 나누었다. 50대 초반이며 스스로 백수라고 소개하더니 이내 결혼10년만에 아내와는 성격차이로 헤어지고 자유롭게 국내외로 여행을 취미삼아 다닌다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지난 8월 한달동안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900km를 걸었으며 국내 웬만한 길도 많이 다녔다고 한다. 일주일전 제주에 도착하여 제주공항부터 올레길을 차례로 완주하고 있으며 다음 달에는 인도와 네팔, 티벳을 여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날그날 개인 블로그에 여행소감들을 기록하고 사이버상에서 여행 동아리들과 소통하고 있다고 한다. 처음 나홀로 여행을 한 내가 그에게 도보여행을 통해 얻은 것이 무엇인가? 라는 단도직입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는 “도보여행은 마치 콩나물기르기이다”라고 답하였다. 그러면서 명확한 여행의 목적을 아직은 모르지만 콩나물에 계속 물을 붓다보면 콩나물이 자라듯이 여행도 어느 정도가 되면 분명한 이유와 뜻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어쨌든 걷는 것과 여행하는 것이 무척이나 즐겁다라는 말을 이어갔다. 잘 마시지 않는 막걸리 한잔 들어가니 나또한 이런저런 삶의 얘기를 늘어 놓았다. 어느새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되어 있었다.
나홀로여행 두 번째날, 잠자리에 들기전 하루를 되돌아봤다. 그나마 내가 남들에게 자랑할게 있다면 중학교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매일 일기를 쓴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거의 습관적으로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일기장에 나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며칠전 여행 떠나오기전 YMCA 사무총장 취임 즈음 전후를 들춰보았었다. 지금이야 허허 웃으며 넘어갈 수 있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렇게는 못했을 정도로 정말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만약 누군가로부터 내가 평가를 받는다면 맡은 업무를 잘했다고 평가받기 보다는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으로 평가를 받고 싶다. 이 여행역시도 그저 좋았겠다가 아니라 순간 순간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여행을 즐겼겠다라고 여겨지기를 바란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자유로움과 행복한 여행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나홀로여행 세 번째날, 여행은 ‘인생학교’다.
11월 4일, 나홀로 여행 세번째 날이다. 새벽부터 비가 많이 내렸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처럼 느껴질 정도로 차가웠다. 가파도에 들어갈지를 고민하다가 당초 계획대로 선착장 매표소로 발길을 옮겼다. 가파도는 여행하기전 이천YMCA 남상오 총장에게서 적극 추천를 받았던 곳이다. 어제 송악산을 지나면서 내려다보인 가파도 안의 모습이 몹시 기대가 되었다. 매표자로부터 가파도에 들어갈 수는 있어도 태풍예보가 있기에 오후에는 배가 못뜨니 나올려면 오전중으로는 나와야 한다는 안내를 받았다. 그러한 상황인데도 그리 크지 않은 배에 사람들이 꽤 탔다. 나와 비슷하게 비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짧은 시간이라도 가파도를 보고싶어하는 마음 같아서 친근하게 느껴졌다.
가파도에서 내리자 비가 더 거세게 내리쳤다. 우비에 타타닥 소리내며 떨어지는 빗소리는 오히려 기분을 좋게 하였다. 뒤에서 내리치는 강한 빗줄기는 나에게 힘내라하며 격려하는 듯 했으며, 앞에서 부딪치는 빗줄기는 마치 인생에 대한 도전심을 훈련하기라도 하는듯 싶었다. 나는 빗소리를 음악삼아 운치있고 정겹도록 즐기며 걸을 수 있었다. 앞으로의 남은 인생도 많은 변화에 직면할텐데 어떠한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즐거움이 되기도 하며 괴로움이 되기도 할 것이다. 기왕이면 긍정적이고 행복한 마음을 갖도록 해야지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고 당시에는 느껴졌을지는 몰라도 지금 돌아보면 어쨌든 잘 참고 견디어 왔고 당시 좀더 최선의 선택과 결정을 하였더라며 지금쯤이면 더 나은 삶이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갑자기 자유로운 영혼이나 된 것처럼 하덕규의 ‘자유’라는 노래를 흥얼 거리면서 걸었다.
“ 자유, 자유, 자유,...
껍질 속에서 살고 있었네 내 어린 영혼, 껍질이 난지 내가 껍질인지도 모르고,
껍질 속에서 울고 있었네 내 슬픈 영혼, 눈물이 난지 내가 눈물인지도 모르고,
껍질 속에서 노래 불렀네 내 외로운 영혼, 슬픔이 난지 내가 슬픔인지도 모르고
껍질 속에서 울고 있었네 내 아픈 영혼, 아픔이 난지 내가 아픔인지도 모르고
그를 만난 뒤 나는 알았네, 내가 애타게 찾던게 뭔지, 그를 만난 뒤 나는 알았네
내가 목마르게 찾았던 자유, 자유, 자유 ....“
가파도를 한바퀴돌고 오전에 빠져 나와 지난 AOS여름연수때 못가봤던 '사려니 숲길'로 가기 위해 버스로 이동하였다. 안그래도 길치인데다가 그동안 네비게이션 있는 자가용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물어물어 가는 여행길이 어느샌가 재밌게 여겨졌다. 삶이란 때로는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할 수 없으며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큰 복이라 생각한다.
(구)서귀포터미널에서 5.16도로를 타고 교래 사거리에서 버스를 하차할 쯤 비가 서서히 멎기 시작하였다. 비가 와서인지 사려니숲길에는 드문드문 사람들이 오고갈 뿐 한산하였다. 가끔씩 쾌청한 하늘 모습을 비추는 가운데 숲의 맑은 공기를 가슴 깊숙하게 들이 마시고 내뿜기를 계속 하였더니 숲 기운이 온 몸으로 감싸안듯 기분이 좋아졌다. 때때로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연애하던 고라니들, 꿩들이 나의 발자욱 소리에 화들짝 놀라게 한 것이 미안할 따름이었다.
두어 시간 걸은 후 붉은오름으로 사려니숲길을 빠져나오니 이미 날이 어둑해졌다. 오늘 밤은 여행 마지막 날이라 조용하게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리고 젖은 옷이며 배낭을 말리고, 피곤한 몸을 따뜻한 욕조에 담근 후 여행올 때 가지고 온 책,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마저 다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교래사거리쪽으로 버스를 타기 위하여 한참을 걷다가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게 되었다. 택시기사는 나이 예순이 거의 다된듯한 활달한 여자분이셨다. 서귀포에 손님을 내려주고 빈차로 제주시내로 가는 도중이었다. 백미러로 보인 내가 지쳐보였는지 서귀포에서 가족들에게 사다줄 김밥(고은정 김밥이라나..)을 먹으라며 건넸다. 김밥을 하나 집어 먹으니 너무 맛있어서 아예 저녁으로 떼우기 위하여 값을 주고 사게 되었다. 택시기사와 여행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분 또한 자신의 이야기를 내게 하였다. 얼마 전까지는 암 판정을 받아 인생의 좌절감과 우울증에 걸려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남은 인생을 좀 더 활기차고 긍정적으로 살기로 작정하고 놓았던 운전도 다시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즐겁게 긍정적으로 살다보니 놀랍게도 암도 어느정도 치유가 되었으며 하루하루를 소중하게 감사하며 살게 되었다고 하였다. 숙소는 얼마전까지 그의 딸이 운영했던 여관까지 소개를 받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나홀로여행을 정리하며
나홀로 여행을 정리하면서 감사한 것이 많아졌다. 스쳐지나갔던 그동안의 일들을 되돌아보았고, 새로운 변화에 대한 어느 정도의 마음도 정리가 되었다. 어쩌면 당초 처음 계획한 것보다 그리고 그동안 경험해본 것 보다 더 큰 의미와 성과를 얻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기에 이번 나홀로여행은 좋은 기회였으며 재충전의 시간이 되었다. 나홀로여행을 통해 나의 진실한 모습을 찾을 수 있었으며, 살아가야할 존재감과 목적을 깨달을 수 있었던 새로운 길위의 인생배움터였다.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지금까지의 삶속에서 누려보지 못한 자유함과 여유로움, 행복감을 충분히 누릴 수 있어서 감사하다.
3박4일간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배려한 가족들과 되돌아볼 수 있는 거리를 제공한 YMCA에게도 감사하다.
더 나은 삶과 남은 행복한 인생을 위하여 푸른 창공위의 비행기에서 최선의 모습을 다시한번 다짐한다. 제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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