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책도서관-5/ 박병각(오카리나 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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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책도서관-5/ 박병각(오카리나 장인)

평화/책

by 함께평화 2020. 7. 3.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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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사람책>

맑고 고운 오카리나 선율로 행복한 홍천을 꿈꾸다

박병각(오카리나 장인)

 

 

 

오카리나와의 첫 만남

 

오카리나를 접한 것은 지금부터 약 20년 전입니다. 나는 1985년도부터 교직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교직 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음악을 너무 좋아했습니다. 얼마큼 좋아했냐면, 하모니카 하나로 형님 한 곡 나 한 곡해서 돌아가면서 즐겨 부르고, 또 그땐 통기타가 유행해서 통기타를 가지고 노랠 부르곤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합창 반에서 파트 장을 맡아 활동하기도 했죠. 4명의 파트 장끼리는 중창단을 만들어서 각종 대외활동을 했습니다.

 

하루는 음악 선생님께서 병각아. 너는 음대를 가라. 네가 음대를 가면 내가 중앙대학교까지는 보내줄 수는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당시는 음대를 가라는 말은 성악을 하라는 그런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집에서 반대하셔서 음대 얘기도 못 꺼내고 음대는 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군대를 갔어요. 군대를 가면서 저는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갔습니다. 그때는 3년이었는데요, 저는 ‘3년 즐겁게 군대 생활을 해야겠다.’ 이렇게 마음먹었죠. 그런데 걱정이 한 가지 있었어요. 하나가 뭐냐면, 군대 3년 동안 음악을 못 듣는 것이 걱정이었어요. 왜냐하면 그때는 음악 듣는 매체가 라디오밖에 없었는데, 그 라디오도 군대에서는 못 듣습니다. 뭐 통신보안 때문에 개인 라디오를 못 갖고 오게 했죠. 그러다 보니까 음악을 들을 방법이 없어서 3년 동안 나는 음악을 못 듣는구나 생각했죠. 그렇게 군대를 들어갔는데, 다행히 저는 통신병으로 빠졌습니다. 통신병은 무전기가 있어요. 그 무전기는 FM 라디오가 잡히는 거예요. 그래서 음악을 아주 자연스럽게 듣게 되었습니다.

제대 후 85년도에 인천에 있는 여자고등학교 발령이 되어서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학교에 합창대회가 있더라고요. 반 대항전 등 1년에 한 번씩 대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가자마자 고 3학년 담임이 됐어요. 그런데 그 학교가 실업계고등학교, 상업고등학교였습니다. 그래서 고3도 그 행사에 참여를 했죠. 다들 걱정을 하는 거예요. 우리 선생님이 어떻게 지도를 하실까 하고요. 저는 고등학교 때 했던 합창반 중창단 등 경험이 가득했죠. 그래서 아이들이랑 같이 준비를 했습니다. 결국은 저희 반은 1등을 했어요. 제가 맡는 반은 매년 1등을 했어요. 학교 음악 선생님께서 한번은 서울대학교에 여름방학 연수를 갔다 오셨는데 단소를 들고 오셨어요. 그 단소를 들고 오시더니 나를 찾아왔어요. ‘박 선생님 단소를 한번 불어 보세요?’ 이러시는 거예요.

처음 보는 악기였죠. 그 음악 선생님한테 어떻게 부는 겁니까?”하고 여쭈어봤더니 이렇게 부는 거라고 알려주셨죠. 하지만 소리가 명쾌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단소를 보고 있으니깐 이렇게 불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제가 한번 불어보겠다.’ 해서 불어봤더니 맑은 소리가 나오는 겁니다. 보니깐 운지 구멍을 잡고 띄고 해 보니깐 이 음이 캐치가 돼요. 그렇게 처음 단소를 잡고 아리랑을 불렀어요. 그랬더니 음악 선생님이 깜짝 놀라면서 여름방학 동안 서울대 연수를 가서 한 달 동안 국악 연습을 했는데, 받자마자 이것을 연주하시니 이것은 박 선생님 악기입니다.’하고 선물로 주시는 거예요. 그때부터 악기 연주를 시작하게 되었던 것이죠.

 

첫 스승을 만나다.

 

그렇게 음악을 시작하고, 인천에서 음악 하시는 분은 누가 계신가 하고 찾았는데 김홍학 선생님이라고 인천 무형문화재이신 분이 계셨어요. 그래서 그분한테 찾아가서 국악을 알려주십시오.’ 했죠. 그분 밑에서 대금, 피리, 단소를 배우게 됐어요. 그 선생님과 같이 연습을 하고 다니고 몇 년 동안 그렇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은 옛날 고전 음악으로만 하세요. 요즘에 저희가 듣는 음악을 전혀 모르셔서 저하고 코드가 맞지가 않았죠. 한 번은 그분께 김영동 씨의 대표적인 곡을 대금으로 연주해드렸습니다. ‘선생님 이곡이 어떻습니까? 저는 이곡이 너무 좋습니다.’ 하고 물어봤더니, ‘그게 무슨 음악이냐! 그건 음악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분과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어느 날, 수업하지 않는 시간에는 보통 음악을 듣는데 FM 라디오를 켰는데, 대금도 아닌데 소리가 너무 희한한 악기 소리가 들렸습니다. 굉장히 깊은 소리 실크로드의 주제곡이었어요. 이게 도대체 무슨 악기인지, 연주자가 누구인지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알아보니깐 일본 연주자 소지로가 오카리나로 연주한 실크로드라고 하는 곡이었습니다. 대금 하고도 비슷하기도 했고 너무 좋아서 오카리나를 배워야겠다고 다짐했죠.

그래서 백방으로 오카리나를 배울 수 있는 곳과 살 수 있는 곳을 알아봤습니다. 그런데 오카리나를 파는 곳이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일본에서 오카리나를 다 수입을 하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러던 중 대구에서 사시는 무사인이라는 닉네임을 쓰시는 분께서 오카리나를 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시 통신으로 그분이 오카리나로 천년 학이라는 곡을 연주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오카리나 소리가 대금과 견주어도 전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오카리나를 배우기 위해 아이디 무사인이라는 사람을 힘겹게 찾아서 결국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에게 전화를 해서 오카리나를 배우고 싶습니다.’하고 부탁을 드렸어요. 결국 그 분과 스승과 제자가 되어 만나지는 못하고 전화상으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무사인이란 스승님이 처음으로 준 곡이 카사비앙카라는 곡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아직까지도 무사인님을 만나지를 못했습니다.

 

오카리나 동호회 까페 개설

그 후로 나는 <오카리나 향기>라는 카페를 만들었습니다. <오카리나 향기>는 상업성을 띄지 않는 아마추어 모임의 카페이면서 유일하게 회원 수가 만 명 이상인 카페였습니다. 지금도 <오카리나 향기>라는 다음 카페가 있습니다. 다른 분한테 이제 운영권을 넘겼는데요. <오카리나 향기>라는 카페를 만들고 전국적인 모임을 가졌습니다. 일 년에 한두 번씩 모임을 갖는데 전국 모임이다 보니 서울에서 하게 되면 부산, 광주 등 각 지역에서 50여 명이 모입니다.

언젠가 대구에서 할 기회가 있어서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선생님 제가 지금 대구에 왔습니다. 선생님 좀 뵙고 싶습니다.’하니까 전화 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이렇게만 얘기하시더군요. 만나는 것은 별로 원하지를 않으시는 분이셨어요.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다리가 조금 불편하신 분이었습니다. 지금도 아마 무사인 오카리나 관련어를 치면 영상으로 또는 음악 파일로 굉장하게 멋진 연주를 하고 계실 겁니다.

 

인연

 

1990년대부터 시작된 정기모임을 통해 알게 된 친구들은 각 지역에서 오카리나를 대표하는 연주자이면서 강사면서 오카리나 또는 음악 분야 기획사 대표 등의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인력 인프라라고 하죠? 그때 그 친구들 중 가장 젊은 친구가 고등학생이고, 나이가 많으신 분은 칠순이신 분이 계셨는데 그때 모였던 인력 인프라들이 지금까지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제 악기 <가람 오카리나>가 전국에 알려지고 소개된 것은 별도의 광고 홍보로 나간 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맺었던 관계를 통하여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내가 인생 2막을 잘 보내고 있는 것도 바로 그분들 덕분입니다.

얼마 전까지도 지금 공방으로 사용하고 있는 저희 집에서 전국 정모를 했고, 또 한 번은 대명 비발디에서도 했습니다. 대명 비발디에서는 담당자에게 공연 제안을 했습니다. ‘오카리나 동호인 모임인데 전국에서 50명 정도가 온다. 50명이 다 각 지역에서 난다 긴다 하는 연주자다. 그러니 무대에서 2시간 정도 무료로 연주를 할 테니 숙박 및 식사 제공을 해주면 좋겠다.’고 했더니 흔쾌히 받아주셨지요. 그래서 1,000여 명 관광객 앞에서 연주를 한 경우도 있습니다. 대명 비발디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비슷한 활동을 한 적도 많습니다.

 

오카리나 제작을 시작한 이유

 

연주를 하려면 악기가 좋아야 합니다. 당시는 대부분 오카리나를 일본에서 수입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사람들이 악기를 제작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제작을 하던 분들이 저한테도 악기를 보내 주어 악기 테스트를 요청했었습니다. 제가 직접 제작하기 전에 불어본 남의 악기가 백여 개가 넘습니다.

저는 감정을 실어서 하는 연주를 좋아하는데 감정을 살리려다 보니깐 만족할 만한 악기가 별로 없었습니다. 높은 음정 부분이나 세게 임팩트 주어 연주를 해야 하는데 제대로 소리가 나지 않아서 감정을 실을 수 없었습니다.

감정을 실을 수 있는 악기, 그런 악기가 어디 없을까 했는데 누가 악기를 보냈는데 소리가 너무 좋아요. 감정을 다 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악기를 주로 썼지요.

 

제가 악기를 하나 받으면 얼마나 연습을 했냐면 운전대를 잡고 출근하고 퇴근하고 어디 갈 때마다 운전대를 잡고 악기를 연습을 합니다. 빨간불 신호등을 보면 저는 너무 좋아요. 그 타이밍에 대기하면서 속주에서 안 되는 부분을 한 3~4개월 연습을 합니다. 차에서 신호등 보고서 연습을 합니다. 그때 연습했던 기억으로 한 손은 운전대를 잡고 그 운전하는 시간도 아까워서 연습을 합니다. 이렇게 운전대를 잡고 있는데도 입이 심심해서 연습을 하는 거예요. 너무 좋은 악기를 그것을 뭐 운전하면서 연습하고 그러다가 무릎에 놓고 무릎에 놓고 신호등 보면서 연습하고 그랬죠.

그런데 어느 날 마트에서 사야 될 게 있어서 차를 옆에다가 깜빡이를 켜고 차를 정지시키고 내리는데 오카리나가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다른 때에는 줄을 목에 걸었는데, 그날은 줄을 목에 안 걸고 있었던 거예요. 그 순간 통곡을 하는 느낌이었어요.

 

그 악기 조각들을 주워서 그 제작자한테 갔어요. ‘내가 이 악기가 너무 마음에 드는데 다른 것 없냐?’ 그러니깐 찾아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찾아봤더니 감정을 받아줄 수 있는 악기가 없어요. 그 후로 몇 년 동안 그냥 제가 생각하기에는 시원치 않은 악기로 연습하다가 이제 내가 만들어야겠다. 내 스타일의 악기는 내가 만들어야겠다.’라고 하면서 우리 학교 앞에 있는 문구점에서 학생들이 쓰는 찰흙을 사 가지고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만드는 방법은 어떻게 알았느냐? 요즘은 인터넷에 다 나와 있습니다. 오카리나 제작을 계속하면서 만들어 보면서 밤을 새워가면서 며칠을 밤을 새웠는지 모르겠습니다. 교사 생활은 계속하고 수업은 하면서, 집에 와서는 연주가 아니라 이제는 제작으로 돌입했습니다.

 

그 이유가 첫 번째로는 내 마음에 드는 악기를 만들어야겠다. 두 번째 이유로는 집사람이 거금을 사기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는데 불면증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어서 집사람을 위해서 사기당한 돈을 벌어 주겠다고 한 말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어떻게 벌어야 되나? 학교 선생 월급으로는 그런 목돈을 만들 수도 없고 그리고 학교 선생님 월급 받아가지고 아이들 대학 다니고 이러는데 결국은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교사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은 오카리나 연주와 강습뿐이었습니다.

 

오카리나로 돈버는 방법?

 

오카리나로 돈을 버는 방법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오카리나 연주활동, 두 번째로 오카리나 강습 활동, 세 번째로 오카리나 제작 활동. 이 세 개중에 나에게 맞는 것이 무엇인지 봤습니다. 연주 활동 그때 당시에도 연주를 하러 다녔어요. 그런데 연주가 거의 주말에 들어오거나 가을철 같은 특정한 철에 들어옵니다. 여름이나 겨울에는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깐 이게 돈이 되지만 용돈밖에 안 되는 거예요.

그리고 강습 활동은 어디 뭐 학교 퇴근하고서 하는 것은 늦습니다. 주부들이 시간이 많이 나는 오전이나 점심 오후반이 개설이 돼야 하는데 저는 오후 타임밖에 되지를 않거든요. 이것도 힘들고 시간 제약이 많아 세 번째 남은 제작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작 활동은 제가 교사로 있는 그 이외에 시간을 다 생산 활동으로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제작을 하는 시간은 나에게 남는 시간을 전부 투자할 수 있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겸사겸사 나에게 맞는 악기도 만들자 그리고 집사람에게 도움도 주자, 이래서 제작에 들어가게 됐던 겁니다.

결국은 오카리나를 만들게 되었고, 제가 만든 것으로 연주를 하게 되었지요. 물론 계속 업그레이드하면서 제가 연주하는 것을 보고서 사람들은 특이하네?, 어디 거야?, 소리 괜찮은데?’ 하면, ‘내가 만들었어. 10년 전에 만든 것을 아직도 써.’ ‘그래? 그럼 나도 만들어줘요.’

그 후 주변 지인들에게 오카리나를 하나 둘 선물로 주게 되었습니다. 이러다 보니깐 이것을 받고 또 그 옆에 사람들도 그거 어디 거야? 물으면 제 아이디를 가르쳐 주었답니다.

 

홍천강

저는 닉네임으로 홍천강이라는 예명을 씁니다. 홍천강이라는 예명을 쓰냐면, 터를 15년 전에 노일리에 잡았는데요. 그때는 오카리나로 앞으로 미래에 이렇게 오카리나로 하겠다는 생각이 없었고, 단순히 취미생활 정도로 홍천강가에서 살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때 파급된 인터넷으로 예명을 쓰곤 했는데 그때 내 예명을 뭐로 할까 생각하다가 그때 모임에 홍천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그냥 홍천강으로 하자 이래서 쓰고 있죠. 그래서 지금도 저한테 홍선생님 이러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홍천강 예명을 쓰면서 악기를 홍천강 오카리나라고 해서 내보냈습니다. 지인들을 통해서 악기를 부탁받고 주문이 옵니다. 이게 10년 전 얘깁니다. 학교생활은 하면서 이 오카리나를 퇴근을 하고 집에 가서 만들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밤 1, 2시 이때까지 이렇게 만들어서 진짜 정성 들여 만들어서 보내고, 주문이 계속 생기는 거예요. 자 이제는 연주도 하고 제작도 하고 학교에서 선생님도 해야 되고 이것도 다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다가 한 4년 전에 과로로 제가 쓰러졌습니다. 학교에서 쓰러져서 119에 실려 갔습니다.

뇌경색 초기 증상 이래서 뇌에 대미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1년 병가 휴직을 내고 2015년도에 노일리에 와서 요양을 하면서 악기를 제대로 만들면서 휴양 겸 이렇게 지내게 됐죠. 그리고 2016년도에는 퇴직계를 내서 명예퇴직을 하게 됐습니다.

 

돈? 돈!

 

언젠가는 동창 모임을 갔습니다. 동창 모임에선 지금의 제 생활을 아니까 저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토요일 집에 갔다가 일요일에 내려와야 했지요. 아내도 한 달에 한 번 정도 내려왔다가 가고, 그랬어요. 아내를 보는 게 한 달에 한번 정도인 거 같아요.

 

동창회에 가서 얘기를 하는데 친구들이 , 너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며? 어떻게 마누라 얼굴을 안 보고 너 혼자 자유롭게 지내냐? 돈도 벌면서 얼마나 좋냐? 너 전생에 나라를 구했다.’ 초등학교 모임인데, 그 옆에 있는 여자 동창이 ! 병각아! 너는 나라를 구했지? 너 마누라는 세상을 구했다. 얼마나 좋냐? 너 안 봐도 되고, 돈은 꼬박꼬박 들어오고아마 아내는 살판났을 겁니다. 지금 아마 집에 안 들어왔을 거예요 친구들하고 어울리고. 그런데 며칠 전엔가 제 생일이었어요. 제 생일날 집사람한테 전화가 왔어요. 여보 당신 생일인데 못 가봐서 미안해요. 제가 그랬어요. 전혀 미안해하지 말라고. 제가 그때 밤낚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캔맥주를 마시면서 밤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핸드폰으로 음악을 틀어놓고 음악 들으면서 맥주 마시면서 낚시를 합니다. 전혀 미안해하지 마라. 나는 지금 천국에 와있다. 거식증 환자가 천당에 갔는데 매일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다면 그 사람한테는 거긴 지옥이다. 먹으면 토하니까요.

그와 같은 이치로 제가 여기 노일리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는데, 어떤 분들은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을 보고 부러워하는 분들은 저를 세상없이 부러워합니다. 네가 최고다. 마누라 잔소리 안 듣고 이혼 안 한 상태로 떳떳하고. 제가 33년 교직을 했기 때문에 집사람은 연금으로 생활을 하고, 저는 연금 구경도 못하고. ? 그것은 저한테 푼 돈이니까요.

1985년도에 프라이드 중고차를 샀습니다. 에어컨이 없었어요. 두 번째로 산 중고차 프라이드는 에어컨이 있었어요. 세 번째로 산 중고차는 엑셀입니다. 네 번째로 산 중고차 프레스토, 다섯 번째 중고차 기아 세피아. 그다음에 산 중고차는 스타렉스입니다. 그다음에 산 중고차 코란도 그리고 또 산 중고차 투싼.

 

집사람이 여보 차 좀 사고 싶은데, 당신 사고 싶은 차가 뭐야?’ 승용차보다는 SUV가 좋을 거 같아서 이것저것 고르다가 외제차로 눈을 돌렸습니다. 외제차 예쁜 게 있는 거예요. 광고를 보니깐 새로 나온 지프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와이프에게 지프차를 사줬어요. 제가 이제 벌어서 뭐에 쓰겠습니까?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오카리나를 만듭니다. 제가 좋아서 만들고 있거든요. 가격은 10만 원부터 시작을 해서 11만 원으로, 다시 12만 원으로 올리고, 결국 17만 원이 됐습니다. 왜 이리 가격이 올랐냐? 주문 물량이 너무 많아서 가격 인상을 합니다. 설명을 붙여요 인상 이유는 제가 돈 벌려고 하는 게 아니라 주문 물량이 너무 많습니다. 물량 조절을 위해 가격을 인상합니다. 계속 인상해요 그렇게 해도 또 물량이 살 때는 타이브레이크를 겁니다. ‘이번 달 주문 끝 이번 달은 주문을 못 받습니다. 계속 주문을 받으면 악기의 품질이 떨어지거나 저의 건강에 영향이 있습니다. 다음 달 초부터 순서대로 주문이 나가니 미리 주문하시기 바랍니다.’하고 설명을 합니다.

 

오카리나

 

이 친구들이 소프라노 C, 알토 C, 베이스 C입니다. 오카리나의 종류가 굉장히 많습니다. 제가 만든 것 중 몇 개 악기를 가져와 봤는데요. 요거는 얘들을 단관이라고 해요. 단관이라 부는 곳이 한 곳이 있는 겁니다. 부는 곳이 두 개가 있는 것을 더블이라고 해요. 그래서 더블은 음역대가 단관보다 6~7개가 더 있어요. 더블 위에 트리플입니다 이것은 3옥타브까지 나오는 것이죠. 그리고 이 알토 C 밑에 있는 것이 소프라노 G 그리고 밑에 있는 것이 소프라노 C입니다. 이것은 랭글리라고 해서 영국식 오카리나입니다. 이건 음을 조합을 시키는 것이에요. 음을 조합을 시키니깐 초등학생들이 두뇌 회전에 좋기 때문에 서울에 있는 많은 초등학교에서는 랭글리를 사용해서 오카리나 강습을 합니다.

요것은 제가 개발을 해서 특허를 낸 것입니다. 슈퍼 더블이라는 악기고요. 요것도 제가 개발을 했는데 랭글리는 원래 이렇게 나옵니다. 앞을 봤을 때 5개의 구멍 뒤에 2개의 구멍. 원래는 낮은 C부터 높은 E까지 밖에 안 나와요. 영국에서 나올 때 이렇게 나왔고, 전 세계에서 이렇게 통용이 되고 있어요. 근데 낮은 A가 안 나와서 나오는 것을 한번 만들어볼까? 해서 만들었습니다.

 

다른 악기들도 높은 E까지밖에 안 나오는데 높은 F를 만들어 보자 해서 만들었습니다. 낮은 A에서 높은 F까지 만들어버리니깐 이것들이 음역대가 똑같아져요. 랭글리가 낮은 C부터 높은 E까지밖에 안 나와서 그건 연주용으로 못써 라고 인식이 되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이것을 낮은 A부터 높은 F까지 만들어서 됩니다. 그러다 보니깐 이것도 특허를 내고 싶었는데 특허를 내는데 들어가는 돈이 500만 원 정도인 거예요. 너무 아깝다는 생각에 특허는 내지 않고, 신 개발품으로 만들었습니다. 이것하고 같은 운지로 나오는 게 이것인데요. 목걸이입니다. 목걸이 액세서리로도 쓸 수 있고, 그냥 액세서리가 아닌 연주가 되는 악기로도 쓸 수 있거든요. 이렇게 연주가 됩니다. 이것과 이것과는 레벨이 달라요.

애들은 연주용 악기고, 이것들은 기념품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두 가지를 같이 시도를 했어요. 왜 같이 시도를 했냐면 이 오카리나가 한순간에 유행하다가 언젠가는 커지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직장까지 교직까지도 버리면서 시작한 오카리나 제작하는 유행이 끝나버렸을 때 그것을 대비해서 이렇게 만들게 되었어요. 근데 애들은 관광객들한테 아주 인기가 좋습니다.

 

어느 행사를 가면 오카리나들이 아주 인기가 좋은데 서울에 있는 코엑스라든지 등 행사가 있을 때 제가 계속 나가봤어요. 아주 호응이 아주 좋습니다. 제가 이걸로 연주하는 곡이 100여 곡이 있거든요. 카사비앙카부터 등등 얘로 연주하는 곳은 거의 다 얘로 연주합니다. 그러다 보니까는 저는 계속 연주를 하고 집사람은 수금을 하고 있어요. 한번 나가는데 행사가 3~4일간 합니다. 행사할 때 보면 하루에 수익이 한 300만 원에서 400만 원, 4일 하면 1200만 원 정도 벌어요. 그러니깐 몇 번 해서 버니 얘로 해서 벌은 돈이 1억이 넘더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안 만들어요. 아니 못 만들어요. 애들도 악기기 때문에 음정 다 잡고 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어요. 얘들은 다른 것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못 만들어요. 얘들을 만들어서 팔면 돈이 되는 걸 아는데 못 만들어요.

코엑스나 행사를 가면 저는 가서 연주를 하고 사람들도 오고 무슨 곡해주세요. 그러면 제가 할 수 있는 곡은 해주고 박수도 받고 사진도 찍고 사인도 하고 뭐 재밌습니다. 완전 현찰이고 이러니까 너무도 좋은데 시간이 없어요.

시간이 되면 춘천 야시장에 한번 나가고 싶어요. 서울에 있을 때 명동 남산 홍대 이런 데 가서 행사를 했거든요. 그때는 아주 인기가 좋았고, 제가 행사 다닐 때는 제천 영화제까지도 가서 행사를 하는데 학생들이 저를 알아보고 어 홍대 아저씨’, ‘홍대 오카리나 아저씨이렇게 부릅니다. 지금은 이 악기 중 몇 개 만 제작을 하고 있어요.

 

직업? 취미를 가져라

 

제가 여러분들에게 해드리고 싶은 말은 직업은 다양합니다. 그러나 좋은 직업이라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에게 맞는 직업인지 아닌지 차이가 있는 거죠.

의사가 좋은 직업이냐. 의사가 좋은 직업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습니다. 제자 중에 정신병자가 된 아이가 있어요. 엄마가 의대를 보낸 겁니다. 얘는 피를 싫어해요, 피를 두려워해요, 그런데도 의대를 보냈죠. 결국은 의대를 졸업하고, 인턴 하면서 돌아버렸어요. 엄마 때문에요.

교사가 좋다. 그래서 연세대 영문학과를 엄마한테 떠밀려서 간 친구가 있는데, 결국 겨우 졸업만 하고, 교사를 안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다른 일을 하는 친구도 있어요.

 

그 사람에게 맞는 직업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직업은 그렇다고 치고, 저의 인생 2막을 열어가고 있는데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의 인생 2막은 어떻게 준비가 되어야 하는가? 여러분들은 저보다도 더 오래 살 겁니다.

이제 앞으로 한 가지 직업 시대는 끝났다고 봅니다. 그랬을 때 정년을 퇴직을 하던지, 그 후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고 했을 때, 제가 여러분에게 권하기를 지금부터의 취미를 정해라입니다.

 

취미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잖아요. 취미를 즐겨하십시오. 제가 오카리나에 빠져가지고, 운전을 하면서도 오카리나를 불면서 앞으로 나는 오카리나 인이 되겠다, 음악인이 되겠다. 오카리나 제작자가 되겠다.’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그러나 나는 거기에 빠졌어요. 하다 보니깐 주위에 그런 사람들끼리 모임이 됐고 그 사람들이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의 큰 베이스가 됐거든요. 여러분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취미를 빨리 찾아서 시작해 보세요.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있다는 거예요. 1만 시간의 법칙 아시나요? 1만 시간이 되려면 하루에 한 시간씩 거기에 미쳐야 돼요. 한 시간씩 하면 1년이면 350시간 정도이고 10년이면 3500시간 정도죠. 30년이면 1만 시간 됩니다. 30살부터 내가 취미 활동에 빠져서 매일 그것을 한 시간씩 즐긴다고 했을 때, 60살이 되었을 때는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된다는 거죠. 그런데 60살까지 안 가도 됩니다. 하루에 2시간씩 즐기면 15년이면 만 시간이 되는 거죠. 하루에 3시간을 즐기면 10년을 하게 되면 만 시간이 되는 겁니다. 그러면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는 겁니다.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되면 저같이 돈이 따라와요.

 

, 선생들이 퇴직을 하면서 퇴직금을 많이 까먹어요. 뭐에 까먹을까요? 식당 호프집. 해보지도 않고 닭 튀긴다고 해서 다 망합니다. 그런데 젊었을 때 낚시 취미를 하면서 그렇게 낚시를 다닌 사람들은 어떻게 되느냐, 30년 동안을 낚시를 했으니깐 주위에 낚시 친구들이 많아요. 그리고 전국에 어디 가면 무슨 고기가 잡히는지 빠삭하게 압니다. 그러면 퇴직을 하고 그 사람이 낚시 가게를 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망하지 않는 겁니다.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것이 취미입니다. 저 같은 경우가 그래요. 어느 직업이 좋은지 나쁜지 판단하는 것보다 자기가 그 행위를 했을 때 기쁨을 갖고 하는 것이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 두서없이 막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혹시 준비는 해왔지만 얘기를 하다 보니깐 다 말씀을 못 드렸어요. 혹시라도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질문해주시면 답해드리겠습니다.

 

 

Q&A

 

Q: 저는 동면에서 농업에 종사를 하고 있는데요. 선생님께서 오카리나 제작 시장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저는 전혀 구매해 본 적이 없어서 궁금합니다.

 

A: 일단 오카리나 시장 보다도 오카리나 제작자들은 넘쳐납니다. 처음에는 일본 제품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왔는데 지금은 일본이라든지 이탈리아에도 수출을 합니다. 그 이유가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오카리나가 들어왔을 때, 오카리나가 우리나라 국악기인 대금이랑 느낌이 비슷한 겁니다.

우리나라는 정서가 한이라고 하는 아리랑 내지는 우리 핏속에 있는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한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이것을 토해낼 수 있는 악기는 부는 악기입니다. 내가 속 안에 있는 응어리를 뱉어낸다고 하는 즐거움이 있거든요. 그런데 오카리나가 바로 그런 악기인 거예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이 오카리나를 처음에는 도공들이 시작을 했어요. 도공은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들이거든요. 그 사람들이 제작을 하면서 흉내는 냈죠. 손재주가 되기 때문에.

그런데 이게 나무가 아니라 도자기이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많은 도공들이 흉내를 내서 많이 만들었는데 만들고 나 보니깐 모양은 나오지만은 소리가 엉터리입니다. 그래서 다른 제작자 보다는 손재주가 있어야 되는 물건이고 귀가 뚫려야 돼요. 그 귀라고 하는 것은 예를 들어, 일반 사람들이 느끼는 정확도가 1프로의 오차를 느낀다고 했을 때 제작자들은 그것에 100.1프로의 편차도 체크를 할 수 있는 귀의 세심한 그런 것이죠. 이런 귀가 뚫려있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성장해 나가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도태되는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저는 연주자로 활동을 했거든요.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연주자가 제작을 했다라고 하는 것에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작에 앞서서 오카리나를 연주하고 이것부터 하는 것이 우선이다.’ 라고 생각이 되고.

시장성은 그렇습니다. 어린애들이 하잖아요. 시장성은 굉장히 좋습니다. 타 지역 같은 경우에는 배우려고 하는 사람보다 강사가 더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계속해서 센터나 수련관 등 오카리나 반을 개설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시작하게 되고.

또 언젠가 행사를 나갔더니만 예전에는 젊은이들이 행사를 하는데 최근에는 60~70대 노인분들이 배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노인대학이라든지 문화센터에서. 노인들이 어떻게 시간을 활용하는 것에 따라 자기가 하고 싶었던 것 그중에 한 가지를 선택을 하는데, 색소폰이라고 하는 악기는 부피도 크고 소리도 커서 집에서 하는데 부담이 됩니다. 연습을 하려면 연습실을 가야 되는 거죠. 그래서 장소가 제한됩니다. 그리고 가격이 부담됩니다. 플롯 역시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오카리나는 애들도 즐겨하면서 경제적으로도 부담도 없고 장소도 제한 없고, 부피도 작고.

앞으로 강사들도 열심히 노력도 해서 강좌도 많이 생길 것이고 노인, 어린아이들도 점점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시장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Q: 아까 악기를 개발하셨다고 했는데, 특허는 안 내시고 제작된 것이 있는지, 앞으로 계획 같은 것이나, 계속 제작을 하실 건지 궁금합니다.

 

A: 계속 제작을 해보니깐 예를 들어서 이겁니다. 이것은 특허가 나온 것인데 어떤 차이냐면. 단관인 악기가 F까지 나오는데 기존에 나왔던 더블은 1관에서 D까지밖에 안 나옵니다. 트리플도 마찬가지고. 제가 생각해보니 1관이 낼 수 있는 가장 높은음이 F까지인데 왜 못 내고 D까지밖에 못 올라갈까? 그러면 1관에서 F까지 다 내고 2관으로 넘어가면 더 높은 음정을 낼 수 있을 텐데해서 개발된 것이 슈퍼 더블입니다.

작년에 중국 <장각>에 갔어요. 집사람이랑 장각에 가기 전에 재작년에 대만 <지우컨>이라는 관광지를 갔었어요. <지우컨>에 가보니깐 오카리나 샵이 있었는데, 그 오카리나 샵에 제 악기가 걸려있는 거예요. ‘호롱불이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딱 걸려있는 거예요. 여기에다가 팔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된 거냐?’ 해서 물어보니깐 코엑스에서 행사를 할 때 중국 사람이 사 가지고 와서 거기서 카피를 해서 팔았다는 거예요.

작년에는 <장각>에를 갔습니다. 절벽에 굴이 쭉 내려와 있어요. 그것을 보면서 좋은 생각이 그냥 머리를 탁 때리는 겁니다. 오카리나에 굴을 만들자. 그러면 소리가 더 울릴 것이다. 그러면 오카리나 어디에 굴을 만들 것인가? 굴을 만들 수 있는 장소를 생각해봤죠.

여기서부터 저기까지를 굴을 만들어서 공명 홀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없는 것은 그냥 리코터 같은 소리가 나는데 공명 홀을 만든 오카리나는 공명이 되어 소리가 더 잘 나오는 거예요.

더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해 한 15가지 정도의 아이디어가 더 들어간 거죠. 여기에 빠지다 보니깐 어떻게 하면 소리가 좀 더 좋게 아름답게 울림 좋게 만들까 연구를 하게 된 것이죠.

좋은 오카리나는 울림이 있어야지요. 울림이 없는 것은 리코더고 음정만 있지. 나쁜 오카리나는 울림이 없어요.

악기를 구분할 수 있는 귀는 처음부터 열리진 않고, 많이 하다 보면 느낌이 다른 것을 느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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