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돌아보지 마라 누구든 돌아보는 얼굴은 슬프다 돌아보지마라 지리산 능선들이 손수건을 꺼내 운다 인생의 거지들이 지리산에 기대앉아 잠시 가을이 되고 있을 뿐 돌아보지 마라 아직 지리산이 된 사람은 없다 / 정호승

평화/시 2014. 10. 11. 07:00

가을 나뭇잎이 떨어진다, 하늘나라 먼 정원이 시든 듯 저기 아득한 곳에서 떨어진다 거부하는 몸짓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밤마다 무거운 대지다 모든 별들로부터 고독 속으로 떨어진다 우리 모두가 떨어진다 여기 이 손도 떨어진다 다른 것들을 보라 떨어짐은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이 떨어짐을 한없이 부드럽게 두 손으로 받아내는 어느 한 분이 있다 / 릴케

평화/시 2014. 10. 10. 07:00

가을 봄은 가까운 땅에서 숨결과 같이 일더니 가을은 머나먼 하늘에서 차가운 물결과 같이 밀려온다 꽃잎을 이겨 살을 빚던 봄과는 달리 별을 생각으로 깍고 다듬어 가을은 내 마음의 보석을 만든다 눈동자 먼 봄이라면 입술을 다문 가을 봄은 언어 가운데서 네 노래를 고르더니 가을는 네 노래를 헤치고 내 언어의 뼈마디를 이 고요한 밤에 고른다 / 김현승 관동출판사 1974년.

평화/시 2014. 10. 9. 07:00

가을 가을은 하늘에 우물을 판다 파란 물로 그리운 사람의 눈을 적시기 위하여 깊고 깊은 하늘의 우물 그곳에 어린 시절의 고향이 돈다 그립다는거, 그건 차라리 절실한 생존 같은거 가을은 구름 밭에 파란 우물을 판다 그리운 얼굴을 비치기 위하여 / 조병화

평화/시 2014. 10. 8. 07:00

가을날 겹옷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은 산산한 기운을 머금고... 드높아진 하늘에 비로 쓴 듯이 깨끗한 맑고도 고요한 아침... 여기저기 흩어져 촉촉히 젖은 낙엽을 소리없이 밟으며 허리때 같은 길을 내놓고 풀밭에 누어 거닐어보다 끊일락 다시 이어지는 벌레소리 애연히 넘어가는 마디마디엔 제철의 아픔이 깃들였다 곱게 물든 단풍 한 잎 따들고 이슬에 젖은 치마자락 휩싸여쥐며 돌아서니 머언 데 기차 소리가 맑다 / 노천명

평화/시 2014. 10. 7. 07:00

가을 사랑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부는 저녁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을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 입니다. / 도종환

평화/시 2014. 10. 6. 07:00

가을의 기도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 같이. / 김 현 승 * 출전:『김현승 시초』(1957)

평화/시 2014. 9. 16. 06:00

상해의 가을.... 서너날 후두두둑 비그친후 상해는 어느새 골목마다 가을옷을 입었네. 바람에 살랑이는 알록달록 빨래잎. 가을은 좁디좁은 골목에서 물드네. ^^

평화/상해 2013. 10. 9. 2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