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스캇 펙/ 율리시즈
이 책은 스캇 펙이 전작 <아직도 가야 할 길>이 ‘인생은 고해와도 같이 어려운 것’이라 보고, 현명하게 삶을 살아가려면 자기 훈육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면, 이 책은 기독교로 개종한 저자가 기독교적 관점에서 ‘인생은 복잡하다’는 사실을 수용하고 그것에 감사할 것을 요청한다. 1부에서는 성장을 다루면서 죽음의 의미, 신비에 대해, 2부에서는 자신과 인간본성, 중독에 다룬다. 3부에서는 궁극적인 영성에 대해 얘기하면서 종교, 성에 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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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복잡하다.
나중에 커서 무엇이 될까, 나는 언제나 이것이 궁금했다... 나의 성장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문득 알게 되었다. 성장이란 줄곧 진행중인 과정이라는 것을 안 것이다.P.14
인간은 누구나 부끄럼을 탄다. 에덴동산에서의 자의식을 가제 되면서부터 인간은 부끄럼을 탔다. 이런 일이 생기면서 인간은 자신을 분열된 존재로 의식하였다. 자연과 하나라는, 우주의 일부라는 의식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그리고 삼라만상과 하나라는 의식의 상실은 우리가 천국에서 추방되었다는 것으로 상징된다.P.15
약물남용을 포함한 대부분의 정신병은 에덴으로 돌아가려는 시도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다.P.16
어떤 의미에서 노화란 성장을 드러내놓고 거부하는 것이다.P.17
비생산적인 고통과 생산적인 고통의 차이는 성장의 고통을 다룰 때 꼭 알고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 우리의 존재를 북돋워주는 것 이상으로 너무 지나친 죄의식은 오히려 존재를 해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신경증적 죄의식이다. P.20
용기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또는 고통을 무릅쓰고 앞으로 전진하는 능력을 말한다... 미성숙한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서로서로 둘러앉은 채 인생이 자신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한다고 항상 불평을 늘어놓는 것이다... 성숙한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인생에서 자신의 욕구를 채우는 것은 자신의 책임 심지어 기회-이라고 생학하는 것이다.P.23
고통을 대하는 태도를 가장 빠르게 변화시키는 방법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영적 성장을 위해 미리 계획된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P.24
의식은 고통의 원인이 된다... 구원이란 말은 '치유'를 뜻한다.이 말은 염증이나 감염 부위를 치료하기 위해 피부에 바르는연고라는 말과 유래가 같다. 구원은 치료의 과정이며 완전해지는 과정이다. 그리고 건강, 완전함, 신성이란 말도 같은 뿌리에서 유래한 것이다. 사실상 이 말들은 모두 같은 의미다.P.25~26
심리치료는 의식을 증가시키는 것이라면서 치유와 의식과의 관계를 인정했다. 더 나아가 칼 융은 악이란 인간이 자신의 그림자를 대면하지 않으려는 데서 생겨난다고 했다. 또한 악은 인간이 부인하려 하고, 생각하기 싫어하며, 의식 하지 않으려 하고, 또 지속적으로 의식이라는 장말 아래 숨겨놓고 무의식으로 남겨 두려 하는 인격의 일부라고 설명하였다. 이런 연구를 통해 융은 무의식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P.26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통을 들어주고 또 참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더욱 더 의식적이 되기 위한 전부다.... 영적으로 성장하면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더 많이 더 깊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가장 놀라운 일들이 벌어진다. 더 많은 고통을 받아들일수록 더 많은 기쁨을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이것이야밀로 이 여행을 궁극적으로 아주 값지게 해주는 진정한 희소식이다.P.30
용서하는 법을 배우면 인간은 한 단계 훌쩍 성장한다. P.31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봄으로써 자기가 할 수 있었던 일-그리고 하지 말아야 했던 일- 과 우선적으로 그러한 결정을 피하게 해주는 일도 있을 수 있음을 깨닫는다. 따라서 ... "나는 과연 이 사람과 이 문제에 관해 고민을 했던가?"P.38
진실은 내가 그것을 원한다는 것이고 내가 치러야 할 대가는 끊임없이 계속 계속 계속 질문은 던지느 것이다..P.39
비록 과학이란 모든 문제에 답을 줄 수는 없겠지만, 과학적인 지식의 추구는 그 자체로 매우 신적인 행위 즉 더 높은 권능에 대한 복종을 포함하는 행위다.p.42
강한 의지가 있다는 것은 자기를 주장할 수 있는 대단한 힘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이며 엄청난 축복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모든 축복은 그 안에 저주를 감추고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작용을 수반한다. 그리고 강한 의지에서 나타나는 최악의 부작용은 바로 강한 기질, 즉 분노라고 할 수 있다. p. 43
자의성이란 아직 마구가 채워져 있지 않은 인간의 의지를 나타내는 말이다. 반면에 자발성이란 더 높은 권능에 의해 부름을 바도 그 힘이 이끄는 대로 기꺼이 가려는 사람들이 지니는 강한 의지와 같다. p.44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자신보다 더 높은 권능을 보지 못한다... 거짓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는 물론이고 자기 자신에게도 얼마든지 거짓말할 수 있고, 자신의 결점이나 악행을 고집스럽게 모른 체한다.p.45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습관이 된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지르는지 곱씹을 때마다 결국은 끊임없이 자신의 뼈를 물어뜯는 것이다. 아마도 이런 이유 때문에 모든 심리 게임 중에서도 가장 일반적인 것을 꼽으라면 비난 게임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p.47
용서란 악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행위다....진정한 용서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p.51
마조히즘은 늘 자기 모습을 변장한 채로 나타나는 사디즘이다. 변장한 증오이고 변장한 분노이기도 하다.p.54
치료에 도움이 되는 안전한 관계를 맺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이미 저질러진 죄를 기억하는 것이다. 분노는 그런후에야 필요하다.p.58
용서를 하는 까닭은 자신을 위해서다. 특히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 용서한다. 왜냐하면 얼마간의 분노가 치료에 도움을 주기는 하지만 정도를 넘어서 분노에 집착하면, 성장은 그대로 멈추고 영혼은 시들시들 죽어가기 때문이다.p.59
죽음이란 삶의 의미를 빼앗아가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가져다 준다. p.63
죽음을 부정하는 사회에서는 죽음을 일종의 사고로 여길 때가 많다.. 죽음을 그저 알 수 없는 사고로 바라보는 이러한 관점은 명백한 잘못이다. 사실 사람들 대부분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를 스스로 선택한다.. 우리는 어떤 수준에서 어떤 식으로든 자기의 죽음에 대해 그런 결정을 한다.p.69
'인간은 배우기 위해 여기에 있다.' 나, 너,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나, 너, 우리가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게 도와주는 구실을 한다. 그리고 죽음은 그 어떤 것보다도 더 많이 배울 수 있게 해준다.p.84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죽음에 관한 연구를 통해 죽어가는 사람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밝혀냈다... 부인(denial)- 분노(anger), 거래(bargaining), 절망(depression), 수용(acceptance)..p.86
사는 법을 배우려면 죽음과 가까워져야 한다. 왜냐하면 죽음은 우리에게 존재의 한계를 일깨워주기 때문이다..p.90
죽는다는 것은 미지의 세계로 들어거는 것이므로, 알 수 없는 세계로의 진입을 어느 정도 두려워한다는 것은 사실 매우 건강하다는 증거다. 오히려 죽음을 무시하려 드는 태도가 건강하지 않은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죽음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죽음을 직시함으로써 종교를 갖게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실제로 더 용기가 있다.p.91
인간은 사실을 안다고 끊임없이 생각하는 걸까? 그 까닭은 두가지다. 겁이 많고 게으르기 때문이다.p.104
완벽한 신념이란 것은 없다... 신과 마찬가지로 현실은 우리가 단지 접근만 할 수 있는 대상이다... 신처럼 현실은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신처럼, 현실은 우리를 소유한다.p.111
예수의 산상수훈...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에서 마음이 가나나한 이란 말은 지적인 측면에서 가장 좋은 해석은 ' 혼란스럽다'라고 할 수 있다. 축복을 받았다는 것은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혼란이야말로 해명을 필요로 하고 이 혼란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해줄 것이다.. 시대를 살면서 마음이 가난함을 느끼지만 새롭고 더 나은 방법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간은 새로운 것에 마음을 열고, 바라보며, 성장한다. 이것이 예수가 "혼란을 겪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하고 말했던 진정한 의미다. 사실상 이 세상의 모든 악은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확신하는 사람들이 저질렀다. 스스로 혼란스럽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악을 저지르지 않는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악을 저지르지 않는다. p.112
겸손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정말로 잘 알려주는 덕목이다.p121
신화는 모든 문화에서 발견되는 이야기다. 문화권마다 시대마다 같은 신화는 꼭 발견된다. 그 분명한 까닭은 신화가 실제로 인간의 본성에 관한 엄청난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화는 인간의 본성에 관해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데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p.138
신화란 인간의 본성이 지닌 역설적이고 다면적이고 복잡한 양상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훌륭한 원천이다.p.145
모든 성인은 과거를 갖고 있고, 모든 죄인은 미래를 갖고 있다.p.185
어쩌면 알콜올의존증이란 다른 사람보다 영혼에 더 목말라하는 것이고, 혹시나 영적인 장애 아니면 좀 더 좋게 말해 영적인 질환이 아닐까 했는데, 이런 생각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p.191
종교인은 '영적인 위기'를 겪는다. 영적인 위기를 겪는 것은 우울증에 빠지는 것보다 훨씬 더 고귀하다. 사실 우울증이 일종의 영적인 위기라는 것을 인정하면 누구라도 금방 극복할 수 있다.p.206
종교적인 말을쓸 때는 매우 조심스럽다. 예를 들면 종교성이라는 말보다는 영성이라는 말을 쓰고, 신이라는 말 대신에 '절대자'라는 말을 더 자주 쓴다. 제도종교가 저지른 커다란 잘못가운데 하나는 매우 성스러운 말들을 타락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있다는 점이다.p.213
기독교에 강하게 끌리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기독교 교리야말로 죄의 본질을 가장 정확히 이해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p.219
기독교 교회가 저지른 가장 큰죄는 아마도 오만함과 나르시시즘일 것이다... 신이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가 바로 그분의 소유다. 기독교의 이러한 편협한 나르시시즘은 복음을 전하는 데 가장 방해가 된다.p.232
호스피스 운동도 뉴에이지가 퍼뜨린 상당히 유익한 효과 중 하나다. 뉴에이지 운동은 자본주의가 저지른 죄, 제국주의와 환경 파괴 그리고 인간파괴라는 죄에 대한 반발이다..뉴에이지 운동은 약탈에서 벗어나 평화주의, 다양성의 포용, 생태학적인 의시과 자연과의 균형을 지향한다... 뉴에이지 운동에 어떤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사상이나 행동 양식에 늘 열려 있다는 점이다.p.274
기독교 신학과 뉴에이지 운동이 결정적으로 갈라지는 부분은 바로 악에 대한 관심이다. 기독교 교리에서는 악이 실재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동양 종교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환영이나 그릇된 지식으로 본다. 즉, 환영과 허위에 충만한 마야로 여긴다... 뉴에이지 운동은 악을 부정함으로써 결정적인 함정에 빠진 것이다.p.281,282
신화에 따르면, 성은 우리가 불완전하다는 느낌에서 비롯되며 완전성을 향한 충동과 신성에 대한 갈망으로 나타난다.p.307
신의 본질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절실한 방법은 인간 본서의 가장 뛰어난 부분을 신에게 투영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신은 - 다른 어떤 것보다더- 인간적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신은 인간 속성의 가장 훌륭한 부분을 나타내며, 이것은 신이 스스로의 모습에서 우리를 창조한 것과 관계있다.p.321
우리는 모두 역사를 움직이는 장본인이다....p.324
제1부 첫 번째 단계: 성장
의식 그리고 고통의 문제/비난과 용서/죽음과 의미의 문제/신비의 취향
제2부 다음 단계: 너 자신을 알라
자기애와 자만심/신화와 인간의 본성/영성과 인간의 본성/중독: 신성한 질병
제3부 궁극적인 단계: 인격적인 하느님을 찾아서
영적인 성장에서의 종교의 역할/물질과 영혼/뉴에이지: 통합 또는 분열?/성性과 영성
에필로그: 난관에 봉착한 정신 의학
세계에서 가장 자극적인 나라/ 짐 로저스 (0) | 2019.1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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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0) | 2019.08.30 |
미학수업 (0) | 2019.07.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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