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22 15:53

몽골여행 7일차

점점 좋아지는 몽골여행 숙박.. 이틀을 그랜드힐 호텔에서 머문다. 아마도 처음부터 호텔에서 머물다가 게르에서 생활했다면 무척이나 불편하고 불평도 있었겠지만 게르에서 출발한 숙박지가 나날이 좋은 시설로 바뀌면서 숙박에서는 어떠한 불평도 나오지 않고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어제오후 올란바토르에 도착하여 뮤지컬 공연 관람 등으로 도심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늦은 저녁 수흐바타르광장에서 찍은 사진도 조명 조정을 잘 못하여 꺼멓게 촬영되었기에 아침  뷔페를 먹고 다시 광장으로 나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오늘 일정이 광장을 중심으로 박물관과 전통연극 공연을 관람하는 일정으로 잡혀 있기에...

 

퍼즐박물관(국제지성박물관)

오전에 가려던 역사박물관이 휴관이라 '퍼즐박물관'으로 이동하였다. 굳이 몽골까지 와서 퍼즐박물관을 가야하는가? 조금 내키지 않음도 있었지만 몽골과 퍼즐의 관계에 궁금증이 들었고 여러 몽골여행객들이 찾는 명소중의 하나라고 한다.

겨울이 오는 길목 비성수기때라 그런지 한산하였다. 영어나 몽골어로만 설명을 하기에 당황했다. 마침 호이가 사장이 몽골어를 한국어로 통역해 주어 설명을 잘 들을 수 있었다. 성수기때는 한국 관광객들을 위하여 한국어가 가능한 직원을 두고 안내를 한다고 한다. 


이곳은 몽골 1호 사립박물관이라 한다. 설립자인 70대 중반의 '잔뚜라기 뚜맨울찌'이라는 분이 직접 만든 퍼즐과 수집한 퍼즐 관련작품, 그리고 손수 그린 그림들이 4층으로 나뉘어 전시되어 있었다. 도난방지와 작품 표절 등의 이유로 사진 촬영은 철저히 금지되어 있다. 도난 예방을 위하여 관람객들이 한무리가 되어 함께 이동하여야 했고, 각층 전시실별로 여러개의 잠금걸이가 있는 문을 여나들어야 했다.


뚜맨울찌 설립자는 한국 인천에서 심장수술을 받았었고 또한 뇌수술을 하기에 조만간 한국을 가야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한국인에게 감사하고 친근함을 표시하며 기념사진촬영도 함께 하였다.
 

왜? 몽골사람들이 퍼즐을 좋아할까? 몽골인들은 세계에서 퍼즐이나 마술을 가장 잘하는 민족이라고 한다. 그러고보면 빠른 속도로 짓고 해체가능한 게르도 퍼즐원리를 응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몽골은 쇠가 귀하기 때문에 못을 구하기도 어려워 빠른 두뇌 회전과 손재주를 이용하여 게르를 공식처럼 외워 지어야 했다고 한다. 손재주가 좋은 몽골인들은 기나긴 겨울을 게르에서 퍼즐을 개발하며 즐기곤 했다고 한다. 징기스칸의 원정을 통해 중동, 유럽 등으로 퍼져나가 오늘날의 퍼즐이 되었다고도 한다.

 
몽골민속공연
저녁 일정으로 몽골전통 민속 공연을 관람하였다. 공연장에는 이미 많은 관람객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서 있었다. 특히 한국 관광객들이 많아 여기가 한국인지 몽골인지 헤깔릴정도이다. 공연은 사진촬영 금지다. 그렇지만 돈을 더 지불하며 사진촬영이 가능하다고 한다. 몽골의 전통 춤과 노래, 악기 연주는 시간이 언제 흘렀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몰입하게 만들었다. 특히 말의 꼬리털로 만든 두 줄의 현악기 마두금(머링호르)을 비롯한 전통악기들이 협연하여 아리랑 및 잘 알려진 고전음악을 연주하는 모습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또한 몽골의 독특한 창법인 '허미'는 한 사람이 저음부터 고음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다양한 소리를 내는 모습은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마치 뼈가 없는듯 몸을 자유자재로 유연하게 하는 기예 공연을 안쓰러움과 긴장감을 갖고 보면서 신기할 정도였다. 가히 몽골의 기예는 세계적이라고 하는데 틀린 얘기는 아닌가 싶다.

 

 


7박 8일의 몽골여행을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몽골여행은 생일날 출발한 '내게 주는 선물'이었다. 시간이 안갈 것 같더니만 금새 지나 버려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몽골의 그 넓은 초원과 푸르른 하늘을 바라보며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그려봤다. 손을 밤하늘로 쭉 뻗으면 별을 건드릴 수도 딸 수도 있을 것 같았고 밤하늘에 내 소망을 하나 두울 걸어놓고 싶었다. 누~런 가을 초원 위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 말, 염소, 양들을 통해 평온함과 자유함이 뭔지를 느낄 수 있었고, 가을이 어떻게 가며 겨울이 어떻게 오는지? 계절의 변화를 보며 시대의 변화에 따른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하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지구상 어느 곳, 어떠한 환경에서라도 사람들은 자연과 더불어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도 깨닫는다.

 

이제, 다시..

어쩔 수 없이 살아갈 환경속으로 부담과 걱정은 내려놓은채 즐거운 마음으로 행복한 마음으로 돌아가자!

 

  

 

국회의사당..중앙에는 징기스칸 동상, 왼쪽은 칭기스칸 셋째아들이자 몽골제국의 두번째 칸인 오고타이 칸, 오른쪽은 칭기스칸의 손자이자 중국을 통일하고 베이징에 원나라를 세운 쿠빌라이 칸...칭기스칸 동상앞의 기마상은 보오르추와 수부타이

 

 

수흐바토르 동상앞에서 기념사진

 

울란바토르의 중심이며 기점이라는 표식에서 기념으로

 

몽골민속공연장

 

 

몽골민속악기 연주

 

 

 

1996년 울란바토르시와 서울시와 자매도시 결연으로 조성된 서울의 거리...서울정

 

평화의 거리..비틀즈광장

 

 

퍼즐모양... 퍼즐박물관 겉모습

 

 

퍼즐과 관련된 유명한 사람들의 그림

 

설립자와 한 컷

 

블루스카이

 

블루스카이 라운지에서 울란바토르시내 야경을...

 

 

 

 

 

이틀을 보낸 그랜드힐 호텔

 

 

7박 8일간의 몽골여행 방문지들....

Posted by 함께평화
2018.10.10 19:47

몽골여행 5일차...초원에서 '울란바토르'도시로

 

줄곧 게르에서 지내다가 쳉헤르 온천 '칸가이 리조트'에서의 하룻밤은 며칠 누적된 여행 피로가 쌓였던 탓인지 시설이 좋았던 탓인지 일찍 잠들었다. 더구나 차가운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콘크리이트벽인데다가 조그만한 히터까지도 있어서  침낭을 뒤집어 쓰지 않고도 밤을 보낼 수 있었던 복에 겨운 시설이었다. 다만 새벽녘에 조금추워 눈을 떴더니 히터가 멈춰있었다. 타이머를 맞추고 잤나 싶어 히터를 다시 작동 시키려고했더니 벽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다. 아침에서야 들은 이야기는 일행중 한 분이 밤사이 집에서 갖고온 작은 전기요를 켰더니 차단기가 떨어져 고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리조트 건물은 내부적으로도 몇년째 계속 지어지고 있는 진행형이란다. 그래도 매서운 추위를 막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가. 사람이 편해지면 더 투정이 많아지는 것은 욕심때문일까?

 

울란바토르(Ulaanbaatar)

어제 힘겹게 오르내렸던 산자락을 다시 차를 타고 올란바토르로 이동하였다. 다시 광활하고 확트인 초원을 지나 도시로 향했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규모의 휴게실이며 편의점에 들러 차도 마시고 화장실도 이용한다.

 

해 저물어갈 즈음에 올란바토르에 도착하였다. 울란바토르는 몽골인민공화국의 수도이며 몽골어로 '붉은 영웅'이란 뜻을 갖고 있다. 1924년 몽골인민혁명 이후 수도로 정해져 지금의 이름으로 개칭되었지만 예전에는 몽골 군주의 주거지 중 하나였으며 라마교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몽골인구의 1/3이 살고 있는 도시라그런지 교통 체증도 만만치 않다. 교통체계도 조금 부족한 듯 보인다.. 도착해서 먼저 들른 곳은 '이태준 선생 기념관'이다.

 

이태준  선생 기념관

대암 이태준 선생 (1883~1921. 경남 함안 출생)은 '몽골의 슈바이처'로 불린다. 1911년 세브란스 의대를 졸업하였다. 1909년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 사건으로 체포되었다가 1910년 2월에 석방돼 안창호의 권유로 항일 비밀결사단체인 신민회의 자매 단체 청년학우회에 가입하였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되자 1911년 중국 남경의 '기독회의원'에서 의사로 활동하다가 독립을 위한 계획을 세우던중 김규식 선생의 권유로 1914년에 몽골 울란바토르로 이동하여 상하이 임시 정부에 독립자금을 운반하고, 약산 김원봉(의열단장), 안창호 등 독립지사들과 뜻을 함께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당시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열고 몽골에 만연해 있던 질병 퇴치하였으며, 몽골 마지막 왕인 보그드 칸의 주치의로도 활동하였다. 1919년에 몽골 정부로 부터 '에르덴 오치르' 훈장을 받았다. 1921년 일본군이 섞인 러시아 백위군이 울란바토르시를 점령했을 때 살해당했다. 1990년에 한국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고, 2001년 7월 이 공원을 조성하였다. 2006년에 게르형태의 기념관이 새워졌으나 주저앉고 부서져 2009년 11월에 통나무집 형태의 기념관을 신축하였다.

 

자이승 승전기념탑(Zaisan Memorial)

저녁식사후 밤하늘에 별이 떠올랐을 때 몽골이 자랑스러워하는 울란바토르 남쪽에 위치한 자이승 승전기념탑에 올랐다. 밤임에도불구하고 관광객이 많았다. 기념탑 주차장까지 오를 수 없어 밑에서 걸어 올라 갈 수 밖에 없었다. 최근에 기념탑 밑부분에 세워진 자이스HILL 건물이 전경을 가리는 것이 아쉬웠지만 내려올 때는 건물 엘리베이터를 타고 쉽게 내려올 수 있었다. 이 기념탑은 사회주의 혁명 50주년을 기념하고 1965년에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군 및 독일군에 대항해 싸우다 전사한 소련과 몽골군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승전 기념탑이다. 승전탑 입구에는 소련이 자랑하던 탱크의 조형물이 서 있다. 1943년에 모스크바를 출발한 탱크가 1945년에 베를린까지 공격해 들어가는 루트가 그려져 있다. 모르긴 몰라도 300여개의 계단을 밟고 기념탑까지 올랐더니 높이 16m정도의 깃발을 치켜든 장병(?)의 웅장한 조각품이 서있다. 기념탑에서는 울란바토르 도시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기념탑 둥근형태의 콘크리이트벽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소련의 사회주의 혁명, 몽골의 인민군 창설, 몽골에 대한 소련의 원조,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 독일을 물리친 소련∙몽골 연합군의 승리, 짓밟히는 욱일기 등이 묘사되어 있다. 

 

테를지국립공원내 호텔(?)

도심에서 1시간여 차를 타고 이동하였다. 여전히 도심을 빠져 나가면서도 편도 일차선이라 그런지 차량이 막히었다. 갑작스럽게 쏟아내리는 눈바람에 숙박지를 찾아 가는데 조금 힘들었다.  기사 '자야'는 여러번 왔지만 너무 칠흙같은 밤인데다가 눈이 세차게 내려 길도 잘 보이지 않자 운전하기 어려운지 긴장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더구나 숙박지로 향하는 길에 웅덩이가 있었는데 물이 얼마나 깊은지를 가름할 수 없어서 여러 길로 들어갈 방안을 찾았지만 여의치 않았다. 한참을 돌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는데 어느 용감한 승용차 한대가 웅덩이 물을 과감하게 지나는 걸 보고서야 우리도 건너 호텔로 갈 수 있었다.

 

매일매일 숙박여건이 좋아졌다. 다만 갑작스런 정전으로 인하여 당황했다. 문제는 수도물도, 화장실물도 정전으로 끊긴다는 것이었다. 하마터면 샤워하다가 정전을 맞을뻔했다. 그래도 간만에 촛불로 분위기있는 밤을 일행들과 보낼 수 있었다.

 

 

 

쳉헤르온천 호텔

 

 

독수리...

 

야크 떼..

 

 

몽골의 밀크티. 수테차... 맛이 좋다

 

창안의 고양이

 

해맑은 몽골 아이..

 

 

화장실에 들어 갔는데... 대충 어떤 표현인지 이해가 되는데... 몇가지는 잘 이해가 안되네...

 

몽골엔 강도 있다! ^^

 

울란바토르로 접근중.. 따닥따닥 붙어있는 집 안에는 게르가 있다...

 

 

 

 

 

 

 

저녁을 먹으로 들어갔던 식당안 모습.. 게르의 반쪽..

 

남화장실 소변기 밑으로 쬐려? 훔쳐보는? ...

 

Zaison Hill 건물

 

 

 

 

 

 

 

 

 

 

 

 

눈살을 뚫고 숙박지로...

 

 

정전이 되니 촛불로 분위기를

Posted by 함께평화
2018.10.10 19:43

몽골여행 6일차

 

몇 차례의 정전사태가 있었지만 하얀눈 내리는 가운데 분위기 있는 촛불의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아침에  가볍게 빵과 수테차로 식사를 하고 다음 일정으로 옮긴다. 눈이 내렸기에 혹시나하여 전날 국제학교 기숙사로 떠나는 딸내미를 만나러 갔던 호이가 사장이 박이박씨와 함께 4륜차를 몰고 왔다. 오늘의 일정은 테를지국립공원의 거북바위와 아리야발 사원, 그리고 승마체험과 칭기스칸동상, 울란바토르로 이동하여 오페라를 관람할 계획이었다. 빠듯한 일정이지만 가능한 몽골의 구석구석을 체험하도록 계획되어진 듯 싶다.

 

 

테를지국립공원

 

테를지 공원을 가로지르면서 더욱이 눈까지 얉게 덮혀서 그런지 어딜보나 그림의 한 장면이다. 한국의 겨울 풍경과는 또다른 느낌의 몽골 자연모습이다.

테를지국립공원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곳으로 바위산과 기암괴석으로 형성되었다.

 

거북바위

거북이 모양 같아서 '거북바위'라 불린다. 울릉도의 거북바위와는 사뭇 다른 한 덩치하는 거북이 형상이다. 거북바위와 관련된 스토리텔링이 있을 것 같지만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한체 기념사진 남기는데 여념이 없다. 비슷한 시간에 도착한 한국의 여행객들이 몰려와 날씨가 추워서인지 버스에 내리자 마자 기념사진찍고서는 다음 일정으로 가버린다.. 패키지 여행의 흔한 모습인 듯.. 몽골여행은 다수의 패키지 여행보다는 4~5명정도의 소단위 여행이 제격일 것 같다.

 

 

아리야발 사원

티벳 불교사원이다. 러시아 군정기 불교탄압으로 많은 사찰이 사라지고 몽골에 몇 안남은 사원중의 하나라고 한다. 1988년에 복원된 아리야발 사원은 부처님이 타고 다니셨다고 전해지는 코끼리를 형상화하여 지었다고 한다. 바위산을 등지고 세워진 사원은 코끼리의 코를 상징하는 가파른 108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코끼리의 머리를 상징하는 사원에 다다를 수 있다. 사원에서 내려다 보는 펼쳐진 자연을 바라보고 사원안으로 들어가 조용히 명상에 잠겨본다.  

 

눈발 맞으며 말을 타고 달려보자~~

승마체험을 하기 위해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포장도로가 끊기고 비포장으로 이어진 산정상을 넘자마자 차들이 서있다. 쌓인 눈때문에 반대편에서 올라오던 차들이 눈길에 미끄러져 빙빙돌고 있었기에 뒤따르던 차들도 내려가던 차들도 어쩔 수 없이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여기저기 서야만 했다. 우리 차도 스노우 타이어를 끼고는 있지만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야 하기에 운전사들이 겁을 먹고 일정을 포기해야 하는 듯 싶었다. 미리 산을 내려갔던 호이가 사장이 걸어 올라와 여행 일행들만 승마장에 가기로 하고 4륜차가 있는데 까지 걸어 내려와 차를 타고 승마체험장으로 가게 되었다.

 

승마장에 도착하니 말타는걸 도와줄 마부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15세도 안되는 나이어린애를 비롯하여 몇사람이 말을 끌고 온다. 안전모를 전해주며 말타기 주의점과 승마 설명을 해주었다. 신혼여행때 제주도에서 잠깐 말을 타본뒤로 처음타보는 말.. 보험도 안들고 왔는데 괜히 말에서 떨어지거나 다치지 않을까 겁도나도 걱정이 되었다. 1시간여 승마장 주변을 눈발을 맞으며 승마체험을 하였다. 처음에는 그저 걷기만 하여 별것 아니네하고 생각하였지만 잠시후 조금씩 말이 뛰기 시작하자 긴장감과 쓰릴감을 갖고 승마체험을 할 수 있었다. 


세계 최대 동상- 징기스칸 동상
테를지공원에서 에르데네 솜(우리나라의 군단위)' 처이징 벌덕'이란 곳에 위치한 40m 높이의 세계 최대의 징기스칸 동상에 들렀다. 몽골 10대 재벌중의 하나인 '젠코 그룹'이 세운 동상이라 한다. 칭기스칸이 태어난 고향 방향으로 말을 타고 있는데 최근 반대방향으로 부인 동상이 세워졌다한다. 앞일정이 늦어지면서 울란바토르에서 오페라 공연 예매를 했기에 동상까지는 올라가지 못하고 동상을 배경으로 사진만 찍고 다음 코스로 이동하여야 했다.

 


몽골 국립오페라극장에서 갈라쇼를~~


수흐바토르 광장 바로 옆에 위치한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갈라쇼를 관람했다. 오페라 카르멘 공연전에 펼쳐지는 축하 갈라쇼였다. 약간의 시설 장비 부족부분이 눈에 띄나 공연 수준은 아주 훌륭했다. 몽골까지 와서 오페라 갈라쇼를 볼 줄이야... 눈호강 귀호강의 날이다. 

 


수흐바타르 광장
수흐바타르는 몽골 혁명의 아버지라 불린다. 그는 친일세력들과 싸운 댓가로 '바타르'(영웅)라는 명예로운 이름을 얻었는데 1921년 3월 중국군을 물리쳤고, 7월 6일에 우르가를 점령, 7월 10일에 영구적인 인민공화국을 세우며 초대 국방장관이 되었지만 1923년 결핵으로 생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수흐바타르 광장은 1946년 7월 11일 몽골 정부가 그를 기념하기 위하여 동상을 세우고 그의 이름을 따서 붙인 광장이다. 우리나라의 광화문 광장 정도 된다고 보면 될 듯 싶다.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저녁식사는 몽골 평양백화관에서 평양냉면~

몽골 울란바토르의 첫날 저녁은 몽골내 북한 식당인 평양백화관으로 갔다. 마침 저녁 공연 시간과 맞아 식사를 하면서 공연을 관람할 수 있었다. 공연 사진은 찍을 수 없다하여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최근 남북간의 평화분위기 탓에 친근함을 느낄 수 있었다.

 

 

 

 

 

 

 

 

 

 

 

 

거북바위의 뒷모습... 거북이는 어데가고 다른 모양의 바위가..

 

 

 

 

 

 

 

 

108계단을 올라 보자

 

쥐모양 손잡이

 

 

 

 

 

 

마치 금방이라도 말타고 닾칠 것 같은 기마동상

 

 

멀리서도 징기스칸 동상이 돋보인다.

 

 

 

 

 

국립오페라극장

 

 

 

 

국회의사당

 

 

 

평양냉면

 

평양 쟁반냉면

 

Posted by 함께평화
2018.10.10 19:32

몽골여행 4일차

여행 일정의 반이 지난다. 광활한 푸른 초원에서 시간을 보내며 잘 안갈 것 같은데 여전히 시간은 잘도 흐른다.

이른 아침에 일행들은 미니사막에서 일출을 보겠다며 몰려갔고, 게르 주변에서 찬날씨임에도 안주인은 맨손으로 소 젖을 짜고 있었다. 미리 송아지가 어미소의 젖을 조금 빨아먹은 후 손으로 젖을 짰다. 그런후 송아지에게 어미 젖을 물렸다. 한편에서는 바깥주인이 말과 소떼들을 초원으로 열심히 몰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떼중에 리더격이 있는지 처음에만 주인이 방향을 정해주면 스스로 리더를 따라 가더라는 것이다.

  

3일간 매일 장거리 여행이었지만 오늘은 그나마 목적지까지 짧은 거리이다.

아침식사를 하고 2~3시간걸려 도착한 곳은 징기스칸에 의해 설립된 몽골제국 초기의 수도인 '하라호름'이다.

 

몽골제국의 초기 수도- 하라호름

징기스칸의 셋째 아들인 몽골제국 2대 왕인 오코타이 칸이 1235년부터 건설하여 1238년에 세워진 곳이 바로 '하라호름'이다. 세계를 제패했던 몽골제국의 초기 수도라 기대했던 것보다 작고 초라하였다. 역사는 늘 강자편만 드는게 아니라 돌고 도는가보다.

 

일본이 지원한 박물관에 들어갔다. 몽골의 역사에 대해 안내원으로 부터 설명을 들었다. 박물관안에서는 사진을 찍을 수 없기에 가이드의 통역에 의존하여 간략하게 설명을 듣는다.  '하라호름'은 궁궐의 담이 검은색이어서 '검은 담'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한다. 1889년 아드린체프가 에르덴조 사원 근처에서 폐허의 흔적을 찾아내기 전에는 아무도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했다고 한다. 정확한 위치는 1890년에야 밝혀졌다. 이때 발굴된 자료에 의하면 1215년과 1268년 큰 화재가 있었고, 1380년, 1466년 두 차례 중국인에 의해 크게 파손되었다 한다. 그래서인지 몽골인은 중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다. 초기 왕궁의 규모로 보았을때 당시의 하라호름의 크게 번창했던 모습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하라호름은 몽골 5대 칸인 쿠빌라이가 수도를 북경으로 옮기면서 이곳은 급속히 쇠퇴하고 만다.

 

에르덴조 사원

에르덴조 사원은 하라호름 성안에 있었던 라마불교 사원이다. 넓은 성안에 덩그러니 몇개의 사원만 남아 있어서 휑한 분위기다.

징기스칸은 제국을 건설하면서 잡아온 노예들의 불만은 잠재우고자 그들의 종교를 존중해주었다고 한다. 성안에는 라마불교 뿐만아니라 기독교, 이슬람교 등의 종교 시설도 있었다. 현재 남아있는 시설이 에르덴조 사원이다. 이곳은 4개의 큰문과 108개의 사리탑으로 둘러쌓인 몽골 최초의 라마불교 사원이다. 에르덴조는 '백개의 보배'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한때 100여개의 절과 300여개의 게르, 만여명의 승려가 거주했던 거대한 사원이었다고 한다. 여전히 지금도 사원안에서 불경을 외우고 있는 스님들을 볼 수 있었다.

 

헤르(Tsenkher) 온천

하라호름에서 다음 목적지인 쳉헤르 온천으로 이동하였다. 쳉헤르온천은 몽골중부지역에 위치한 아르항가이 아이막(우리말로 '도')이라는 곳에 있다. 하라호름에서 점심을 먹은 후 시장에 들러 온천에 들어가기 위한 반바지를 샀다. 

 

그동안 넓게 펼쳐진 초원만 지나다가 쳉헤르온천을 가면서 그래도 몽골의 산과 나무를 볼 수 있었다. 전날 내린 눈때문인지 땅이 질퍽거렸고 스타렉스가 4륜차 아니었기에 산을 오르는 동안 무척이나 긴장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자칫 경사 높은 산을 오르다가 차가 설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생겼지만 '자야' 기사를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구릉과 산을 넘으면서 초원에 풀어 놓은 양, 염소, 소는 물론 야크와 독수리까지 볼 수 있었다. 가을지나 겨울이 돼서인지 이미 침엽수는 누렇게 단풍이 물들어 있었다. 한국에서야 흔한 산풍경이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산과 초원의 모습은 그야말로 그림같이 느껴졌다.

 

비포장 산길을 구비구비 울퉁불퉁 넘실넘실 따라가다 드디어 목적지인 쳉헤르온천리조트에 도착했다.

게르에서만 머물다가 콘크리이트 구조물을 보니 조금 어색하기도 했지만 현대식 시설이라 금새 표정이 바뀌었다. 숙소가 점점 매일매일 좋아지고 있다. 건물 바깥에는 온천 원수에서 배수관을 연결하여 담아놓은 노천탕이 있다. 날씨가 워낙에 추워 온천에 들어가야되나 망설였지만 이곳까지 온 목적중 하나가 노천탕에 몸 담그는게 아니었던가? 용감하게 윗몸에는 아무것도 거치지 않은채 시장에서 산 반바지를 입고 노천탕에 들어갔다. 참을만 했다. 온천바깥으로는 매서운 칼바람이 휘날렸지만 40도를 오르내리는 온천은 그저 따뜻하기만 했다.  귀찮고 두렵다고 머뭇거리기보다는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리조트에는 한국인 관광객들 몇명과 지역 학교 교사들이 있었다. 몽골에서는 매년 10월 첫째주 일요일이 '스승의 날'이라고 한다. 행사는 저녁식사 즈음에 시작한 스승의 날 행사에는 간단한 기념시과 시상식에 이어 밤늦도록 노래와 댄스의 시간으로 이어졌다. 수고한 교사들의 노고에 감사하기에 시끄러워도 불평하지 않고 취침 음악으로 여기고 곤한 잠을 ~~

 

젖짜는 주인...사진을 찍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카메라를 향하여 머리까지 돌려줍니다.

 

젖을 짜자마자 송아지가 어미젖을...

 

아침이다 너희들도 초원으로 출근해야지...

 

 

하라호름의 안내도

 

하라호름 박물관

 

에르덴조 사원

 

 

 

 

 

 

 

 

쳉헤르 온천 가는 길.. 산 오르고 넘고...

 

 

 

 

쳉헤르온천 리조트

 

노천탕

 

유명 세계인을 그림속에...

Posted by 함께평화
2018.10.10 19:27

몽골여행 3일차

첫날 게르캠프보다는 샤워시설이나 화장실이 잘 갖춰져서 사용하기 좋았다. 오늘 저녁 숙박지가 전통 유목민 게르에서 머무르기때문에 화장실이며 샤워장이 없다고 하여 아침에 볼일볼 것 다 보고 샤워도 한번 더 해본다.

 

첫날 570킬로미터 여정, 그리고 어제는 540킬로미터.. 그리고 오늘 목적지인 엘승타사르해를 가기 위해서 울란바토르를 거쳐갈 경우 500키로정도 돌아가야 한다고 한다. 만약 목적지까지 지름길로 가로질러 가면 320킬로미터 정도 걸린다고 한다. 문제는 가이드도 처음 가는길이라 길을 헤메거나 잃을 수도 있다고 겁을 준다. 가이드가 우리에게 선택권을 준다. 어차피 오늘 일정은 목적지까지 가서 낙타체험을 하는 것 말고는 다른 일정이 없었다. 우리는 길도 모르거니와 장거리보다는 조금이라도 짧은 거리를 가면 좋겠다는 생각에 가로질로 가기로 함께 결정했다. 솔직히 내심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길을 잃고 헤매더라도 몽골에서의 추억을 남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새로운 길에 대한 도전과 쓰릴감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가면 길이 되는 몽골초원..사슴몰이

가이드도 처음가는 길이라 약간은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믿고 간다. 우리 차를 운전하는 '자야'는 한국에서 6년정도 일한 경험이 있고 한국말고 능숙하다. 어릴때부터 말을 탔기에 지금도 잘 탄다고 자랑한다. 흔히 푸른 초원을 보고 자란 몽골사람들이 시력이 좋다고 알고 있다. 제대로 길을 가는지도 모르겠지만 한 차를 탄 우리 일행은 블루투스에 연결하여 소풍을 가는마냥 음악도 틀고 신났는데 갑자기 자야가 야생 사슴이 보인다며 길도 없는 초원 위로 속력을 내어 쫓는다. 우리 눈에는 넓디 넓은 초원밖에는 보이지 않는데 쏜살같이 달리는 덜컹거리는 차가 불안하여 안전띠를 동여매고 손잡이를 쥐어잡는다. 달리는 앞쪽 방향을 바라보니 멀리 먼지속에 뭔가 뛰는 모습이 보인다. 이내 사슴들이 놀라서 삼삼오오 떼를 나눠 재빠르게 흩어져 달아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확실히 몽골 사람의 시력이 좋다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초원에서만이 느낄 수 있는 속도감과 짜릿함을 맛보았다. 사슴몰이를 하는 자야의 눈동자가 어느때보다도 초롱초롱 빛이났고 매섭게 보였다. 마치 말타고 집중하여 사냥을 하는 것 마냥 운전을 하는 그의 모습이 달리 보였다. 자야는 충분히 잡을 수 있었지만 손님들이 있기에 맛보기만 보여준다며 오늘 사슴들이 운이 좋다고 넉스레 떨며 목적지를 향해 운전대를 돌렸다.

 

엘승타사르해(Elsen Tasarhai)

우리에게는 바양고비, 미니고비, 미니사막 등으로 불린다고 한다. 엘승타사르해(Elsen Tasarhai)의 뜻은 '분절되어 이어진 모래'라고 한다. 실제로 가보니 작은 규모의 하얀 모래언덕이 넓은 초원속에  덩그러니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것이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게르에 도착하기전부터 하늘에 잿빛 구름이 가득차면서 진눈깨비와 더불어 하얀 눈발이 흩날렸다. 어제까지만해도 날씨가 좋았는데. 여하튼 첫눈을 여기서 보게 된다. 몽골날씨가  추워봐야 얼마나 춥겠냐며 겨울옷도 제대로 챙겨오지 않았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일행들이 나보고 춥지 않냐고 물을 때면 존심상 그렇게 춥지 않다고 참을만 하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몹시 떨어야만 했다.

 

오늘의 목적지인 이곳 게르는 화장실도 샤워장도 없는 몽골 유목민의 게르이다. 널려있는 것이 화장실이지만 여성들에게는 여간 불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매서운 칼바람과 눈발이 내리기에 낙타체험을 다음날 아침으로 미루려다가 내일 날씨가 더 춥다는 말에 진행하기로 하였다. 함께했던 일행이 다행히 목덜미와 장갑을 더 갖고 왔다고 빌려주는바람에 추위를 조금 면할 수 있었다.

 

겸손한 낙타를 타보자

그렇게 가까이에서 낙타를 본 것 처음이다. 훈련을 잘 받은 탓인지 세차게 부는 바람에도 아랑곳하지않고 다소곳이 겸손하게 앉아서 기다리고 있었다. 앉아있는 모습도 신기하고, 봉우리가 둘인 것도 신기하고 푹신한 털이 부위마다 있어 신기하고, 걷는 모습도 신기하고, 덩치에 비해 순하게 생긴 것도 신기하고... 코에 멍에가 끼어있는 모습이 다만 안쓰러울 뿐이다.

주인으로부터 낙타 타는 방법을 안내받았다. 낙타가 일어나는 반동에 따라 허리를 뒤로 젖혔다가 함께 일어 나야 한다고 한다. 막상 낙타등에 올라보니 높이감이 있었고 내 체중때문에 낙타허리가 걱정이 되었다. 쌍봉 사이에 걸터앉으니 푹신하고 안정감이 있었다. 봉우리에 난 털때문에 차가운 손을 털에 묻을 수 있어 좋았다. 내가 탄 낙타가 사막으로 가기전 배가 고팠는지 자꾸만 고개숙여 풀을 뜯어먹으려는 바람에 떨어질까 슬쩍 겁도 났지만 50여분 사막주변을 둘러보는 기분은 짜릿하였다.

 

소와 양들과 더불어 함께 지샌 게르에서의 하룻밤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칠흙같은 어둠속에서 화장실이 따로 없기에 게르 주변에서 실례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주변에는 초원에서 돌아온 양과 염소들이 옹기종기 모여 밤을 지새우고 있다. 간혹 음~메하며 경계를 하는 놈도 춥다고 소리내는 놈들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게르안에서 함께 잘 수 는 없지 않은가! 여하튼 색다른 몽골자연체험을 할 수 있었다.

 

 

 

게르 식당

 

안녕히 잘가라는 표시판 앞에서 단체 사진 한컷..

 

 

피로슈키..호떡처럼 생긴 만두안에 쌀이 들어 있네요..

 

 

 

 

 

 

 

낙타들이 대기하고 있다.

 

말똥을 태워 난로를 피운다.

 

저녁이 되자 게르로 돌아오는 양과 염소

 

 

추위를 막기 위함인지... 옹기종기 몰려있는 양과 염소떼들...

 

 

낙타타기체험...

 

Posted by 함께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