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리히 본회퍼(에릭 메택시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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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에릭 메택시스 저)

평화/책

by 함께평화 2020. 3. 10.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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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리히 본회퍼

에릭 메택시스 저ㅣ포이에마

 

 

 

요즘처럼 기독교가 욕을 먹는 경우는 없는 듯 하다.

이는 사랑과 자비, 섬김과 희생의 순수한 기독교적 신앙을 추구하기보다는 형식적이고 종교적이며, 배타적이고 이기적이고 위선적이며, 성공주의와 권력과 결탁하고 편승하려는 모습들 때문이라 본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의 주범 히틀러에 대항하여 목사, 스파이, 순교자로서 기독 신앙과 일치한 삶을 살았던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의 전기를 다룬 책이다. 그의 삶 전반에 걸친 자료들... 일기, 편지, 논문 그리고 다양한 주변 인물과의 인터뷰를 토대로 저자는 본회퍼의 신학과 삶을 소설 형식을 빌려 조명하였다.

 

본회퍼는 1906년 2월 4일 독일 브레슬라우에서 의사였던 아버지, 칼 본회퍼와 교사였던 어머니 파울라 본회퍼 사이에 여섯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유한 가정 환경에서 자랐으며 음악에 재능을 갖고 있었지만 1923년 튀빙겐 대학교와 베를린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졸업논문이 바로 <성도의 교제>1993이다.

 

본회퍼는 에스파냐 독일인 루터교회에서 부목사로 목회를 시작하면서 논문 <행동과 존재>를 발표하면서교수자격을 취득하게 된다. 25세 목사 안수를 받고 진보신학의 명문으로 불리는 미국 유니온 신학교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인종차별을 받는 흑인들의 삶과 민중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한다. 특히  이곳에서 프랑스 개신교 성직자인 장 라셰르 목사의 영향으로 예수의 산상수훈에 신학적 뿌리를 둔 기독교 평화주의자가 된다.

 

1933년 집권한 나치의 독재에 대해 저항은 커녕 오히려 히틀러를 그리스도로 숭배하는 독일교회에 절망하고 고백교회를 결성하고 그리스도의 양심으로 나치에 저항하게 된다. 이때부터 나치의 박해와 탄압을 받게 되고 1943년 4월 체포되어 2년간 수용소를 전전하게 된다. 이때 그가 가족과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옥중서간>으로 출판되었다. 

 

본회퍼는 1949년 4월 9일 플로센뷔르크 수용소에서 교수형으로 처형되어 39살의 짧은 삶을 마치게 되었다. 그의 유언은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다."이며 그의 묘비에는 "드트리히 본회퍼= 그의 형제들 가운데 서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라고 쓰여 있다.

 

디트리히 본회퍼의 신학에서 중요한 것은 '고난을 함께 나누는 삶의 실천', 그리고 '값싼 은혜'라 할 수 있다.

 

나치의 박해가 시작되었을때  본회퍼는 미국 유니온 대학으로 망명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독일 국민과 고난을 함께 하지 않는다면, 전쟁이 끝났을때 독일교회를 재건하는 일에 동참할 수 없다면서 거부하고 기꺼이 고난을 받게 된다.

 

또한, 본회퍼는 덴마크 기독교 사상가 키르케고로의 영향으로 독일교회가 값싼 은혜를 누리고 있다고 비평하였다. 그가 말하는 값싼 은혜는 그리스도를 따름이 없는 은헤, 그리스도를 따름에 따른 고난이 없는 은혜, 성육신의 실천이 없는 것, 즉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이 없는 신앙은 싸구려 신앙에 불과하다라고 주장하였다.

 

 

본회퍼를 읽으며 두가지를 깨닫는다.

하나는 시대적 상황에서 예언자적 삶을 살아야 겠다. 또하나는 신앙과 행위가 일치된 삶을 살아야겠다.... 

 

  

 

 

 

 

 

 

 

 

값싼 은혜는 우리를 사랑하고 영접하기만 하는 하나님, 전혀 거룩하지 않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아무 값어치 없는 사랑일 뿐이다. 값싼 은혜로는 우리의 삶을 결코 변화시킬 수 없다./17

 

참된 은혜는 값비싼 희생을 통해서만 우리에게 다가온다.

 

값싼 은혜라는 개념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불순조에 불과하다./36

 

동료 교수 셰러는 본회퍼를... 그는 무절제한 것, 과장된 것, 훈련되지 않은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정도로 그의 인격 안에서 모든 것이 완벽하게 통제되고 있었다./36

 

 

직관적으로 보아야 제대로 보인다. 그러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64

 

그는 교회의 본질을 사색함으로써 유럽의 에큐메니컬 협의회에 뛰어 들고, 독일 바깥에 있는 그리스도인들과 손을 잡았으며, 교회를 독일 민족과 연결한 창조신학의 위계질서에 속임수가 있다는 걸 간파했다. 교회가 민족 정체성과 혈통의 제한을 받는다는 생각은 나치가 맹렬히 추진하고 비참하게도 대다수 독일인이 신봉한 생각으로 교회가 보편적이라는 생각에 위배 되었다./62

 

나치가 독일의 루터교를 접수라려하자 디트리히는 루터교로부터의 이탈을 주도하고 고백교회를 출범시켰다. 처음에는 하나의 운동으로 여겨졌지만, 이후 하나의 공식적인 교회가 되었다./66

 

디트리히 본회퍼는 평생토록 존경하고 존중한 학자는 바르트다. 그는 바르트의 견해에 동조하여 텍스트를 "역사적 자료로만 보지않고 계시의 작은으로 ㅂ았으며 견본문서로만 보지않고 거룩한 정경으로 보았다./71

 

디트리히는 로마에서 씨름하기 시작한 문제, 곧 교회란 무엇인가?를 논문주제로 삼았다. 제목은 <성도의 교제:교회의 사회학에 대한 교의학적 연구>였다. 그는 교회를 역사적 실체나 제도와 동일시하지 않고 교회공동체로 존재하는 그리스도와 동일시 했다./73

 

사람들이 기도하는 곳에는 교회가 있고 교회가 있는 곳에는 외로움이 있을 수 없다...

 

기독교는 교회에 적대적인 세균을 자기 안에 감추고 있다. 기독교의 종교성과 교회에 대한 우리의 헌신을 토대로 우리가 하나님에게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기곡교 사상을 철저히 오해라혹 왜곡하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다./88

 

본회퍼의 설교는 영적으로도 지적으로도 회중들에게 도전을 주었다./83

 

디트리히는 자신을 감시하고 교만에 빠지지 않게 근신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이런 능력은 그가 이기심과 교만을 용납하지 않는 가정에서 교육받았다는걸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디트리히는기독교적인 관점에서도 교만의 유혹을 잘 알았다./84

 

오늘날 기독교적 종교에 의해 피어난 가장 아름다운 꽃처럼 보이는 인본주의와 신비주의를 인간 정신의 가장 높은 이상으로 칭송하고 종종 기독교 사상의 면류관이라 여기지만, 사실 인본주의와 신비주의는 피조물을 신격화한 것에 지나지 않다. 하나님 한 분에게만 속해 있어야할 영광을 가로챈 것이므로 기독교 사상이 단호히 물리쳐야 할 것들이다. 인본주의의 신은 기독교가 제시한 하나님 개념으로서 인간의 바람들을 가진에게로만 향하게 할 뿐 반대쪽으로 향하게 하지 않기 때문이다./ 89

 

디트리히가 보기에 철학은 인간이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진리를 탐구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르트가언급한 종교의 전형이었다. 그런 종교는 자기 힘으로 하늘이나 진리나 하나님에게 도달하려고 애쓰는 인간의 종교였다. 하지만 신학은 자신을 계시하시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시작되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끝난다. 말하자면 그런 계시와 동떨어진 진리는 있을 수 없다./92

 

산상수훈은 본회퍼의 인생과 신학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나를 따르라>라는 책을 쓴 계기도 산상수훈었다. .. 라세르와 교류하다 에큐메니컬 협의회에 투신하고, 이 협의회를 통해 히틀러와 나치에 맞서 싸우는 레지스탕스에 가담하기도 했다./108

 

본회퍼는 지적 추상화에는 관심이 없었다. 신학은 실제적인 면, 곧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살 것인가를 다루어야 한다고 보았다./119

 

본회퍼는 사상을 전달하는 데에만 충실하려 했다. 사상은 스스로의 힘으로 설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본회퍼의 가장 중요한 사상 가운데 하나였다./127

 

본회퍼가 "교회가 국가에 대처할 수 있는 세가지 방법"

1.국가의 행위 및 그 행위의 적법성과 관련하여 국가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다. 2. 국가의 행위에 희생당한 이들을 돕는 것이다. 3. 바퀴에 짓밟힌 희생자들을 싸매어 줄 뿐 아니라 바퀴 자체를 저지하는 것이다./136

 

히틀러에게 기독교는 온순함과 무기력을 설교하는 종교였다./146

히틀러에게는 무자비가 큰 덕목이었고 자비는 큰죄였다. 온유함을 옹호하는 것이야말로 기독교의 최대 난점이었따.

 

<나를 따르라>에서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는 것은 싸구려 은혜의냄새를 풍긴다고 말한다. 일단 믿었으면 행위가 뒤따라야지 그렇지 않으면 믿는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196

 

본회퍼는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귀여겨 듣고 그 말씀에 복종해애 한다고 설파했다./196

"안전한 길에는 평화에 이르는 길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평화에 이르려면 위험을 무릅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그 자체로 엄청난 보험이기에 절대로 안전할 수 없습니다. 평화는 안전의 반대입니다. 안전을 요구하는 것은 자기를 지키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평화는 하나님의 계명에 우리 자신을 송두리째 내어 드리는 것을 의미하고, 안전을 바라지 않으면서 믿음과 복종으로 민족의 운명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민족의 운명을 조작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무기로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 함께하셔야 이길 수 있습니다. 길이 십자가로 이어질 때에만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196

 

신앙에는 일시적 유행어와 진부한 표현과 광신적인 모습이 없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세계와 문화속으로 모셔가는 그리스도는 더이상 그리스도가 아니라, 인간이 번지르를한 모조품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201

 

 

교회 회복은 실로 새로운 수도 생활에 의해 이루어 질 겁니다. 새로운 수도 생활과 옛 수도 생활의 유일한 공통점은 그리스도를 본받으면서 무엇과도 타협하지 않고 산상수훈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됩니다. 지금이야말로 그 일을 위해 사람들을 모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타협없이 옹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평화, 사회적 정의, 그리고 그리스도인 것 같습니다./210

 

본회퍼는 일종의 수도 공동체를 염두에 두었다. 그 공동체는 예수께서 산상수훈에서 제자들에게 살라고 명하신 대로 살아가는 공동체, 신학생으로서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아가는 공동체였다./212

 

본회퍼는 설교를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설교는 기도나 성경묵상과 마찬가지로 하늘의 음성을 듣는 기회였다. 설교자의 거룩한 특권인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흘려보내는 도관이었다. 설교는 성육신과 마찬가지로 계시의 자리, 곧 그리스도꼐서 세상 밖에서 세상 안으로 들어 오시는 자리였다./220

 

(본회퍼가 목사 후보생에게 인식시키려 한 내용)

"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을 원상태로 돌려 놓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그들 자신의 필요를 보게 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종교나 거짓 경건이 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러한 필요를 해결해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여과기나 별도의 설명 없이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입니다."/221

 

하나님의 말씀을 가급적 순수하게 전하고, 말씀을 조장할 필요나 꾸밀 필요를 느끼지 않고 전하는 것이야말로 본회퍼의 목표였다./234

 

본회퍼는 예수 그리스도를 타자를 위한 인간, 자신의 욕구와 욕망을 철저히 여윈 채 타자를 사랑하고 섬긴 이타의 화신이라 부르곤 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타자를 위한 교회라고 불렀다. 말하자면 그리스도는 교회만의 주님이 아니라 온 세계의 주님이시므로 교회는 자기를 초월하고 목소리를 잃은 이들을 위하여 목서리를 내고 약자들과 사생아들을 변호라기 위해 존재해야 했다./252

 

1935년. 본회퍼는 정치적 저항의 문제를 소개했다.... 우리는 고백이 아무리 용감해도 고배에만 머물러 있으면 살인자들과 공범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고백을 통해 저항하려고 했지, 저항을 통해 고백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285

 

 

본회퍼는 윤리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성공이 모든 것의 척도가 되고 성공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세계에서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달리 이의 모습은 낯선 사람의 모습일 뿐이며, 기껏해야 연민의 대상일 뿐이다. 그런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것은 성공뿐이다. 그 세계에서는 생각이나 견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업적이 결정한다. 성공만이 이미 저지를 악행을 정당화할 수 있다. .... 역사는 지상의 어떤 권력도 스스로에게 허용하지 않는 솔직함과 냉정함을 가지고 자신을 위해 다음과 같은 격언을 주장한다. 바로 "목적이 수단을 정다화한다"는 것이다... 십자가에 달린 이의 모습은 성공을 기준으로 삼는 모든 사고를 무력하게 만든다.../287

 

본회퍼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른 모든 것을 규제한다고 확신했다.... 하나님께 가장 깊이 진실하다는 건 율법적으로 살거나 규칙대로 혹은 원칙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분과의 관계를 생생히 유지하는 것을 의미했다.../290

 

우리 자신의 기도로는 하나님께 이를 수 없고 그분의 기도, 즉 예수가 활용하여 기도했던 구약성경의 시편들로 기도함으로써 그 기도를 타고 효과적으로 하나님에게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291

 

하나님과 평화롭고, 다른 사람들과도 평화롭고, 우리 자신과도 평화롭게 지낼 때만, 우리는 커다란 자신감을 갖게 될 것입니다...(폰 베데마이어에게 편지)...328

 

본회퍼는 일어날 일들 때문에 움츠러들지 않고 자유 안에서 당당히 걷는 것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행위로 여겼다....

 

죄책을 짊어지길 두려워하며 사는 것 자체가 죄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건 그분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자유와 기쁨속에서 움직이며 옳고 선한 일을 하는 것이지 실수할까봐 벌벌 떠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335

 

본회퍼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평생토록 활동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에 복종하며 사는 것과 관계가 있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마음만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도 필요로 하는 삶이었다. 충분히 인간답게 되는 것, 우리를 지으신 분에게 인간으로서 복종하며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요구였따. 그리스도인의 삶은 갑갑한 삶, 위축된 삶, 조마조마한 삶이 아니라 멋지고 즐겁고 후련한 자유를 맛보는삶이었다./352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너무 성급하게 종교적으로 말해서는 안된다... 본회퍼는 모든 것을 하나님에게 맞추려고 애썼다./359

 

 

 

고통을 피하려고 진정한 기쁨과 인생의 의미를 회피하는 것은 사실 그리스도인의 자세도 아니고 인간적인 자세도 아니네...(1944.1.23 편지에서)

 

본회퍼는 표준 규격에 짜 맞춘 종교가 하나님을 축소시키고 주님을 설명이 불가능한 것들만 다스리는 분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걸 알아냈다./367

 

본회퍼의 신학은 언제나 성육신 사상을 지향했다./367

 

 

선한 권능에 감싸여

 

선한 권능에 어린애같이 고요히 감싸여

보호와 위로를 받으니 놀라워라

나 이날들을 그대들과 함께 살려네.

새해를 그대들과 함께 맞이 하려네.

 

묵은해가 우리의 마음을 괴롭히고,

괴로운 날들의 무거운 짐이 우리를 누르려 하니,

오오 주님, 우리의 놀란 영혼에

우리를 위해 행하신 구원을 베푸소서.

 

당신께서 괴로운 잔, 쓴잔,

철철 넘치는 고난의 잔을 건네시니,

당신의 선하시고 사랑스러운 손에서

떨지 안혹 감사히 받아 마십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우리에게 다시 한 번 기쁨을 베푸시어

이 세상과 그 햇살을 보게 하신다면,

과거를 잊지 않고

우리의 일생을 온전히 당신께 바치겠습니다.

 

당신께서 우리의 어둠 속에 들여보내신

양초가 오늘 따스하게 환히 타오르게 하시고,

되도록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해주소서!

우리는 아오니, 당신의 빛은 밤에 반짝입니다.

 

고요가 우리 주위에 짙게 퍼지고 있으니,

우리에게 들려주소서. 보이니 않게 주위에 퍼지는

세상의 저 충만한 소리를,

당신의 모든 자녀가 부르는 힘찬 찬송 소리를

 

놀랍게도 선한 권능에 감싸여 보호를 받으니

우리는 다가올 일을 자신 있게 기다리노라.

하나님은 저녁에도 아침에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새날에도 확실히 함께 하신다.

/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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