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에서 중화민국의 국부 '손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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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에서 중화민국의 국부 '손문'을 만나다..

평화/상해

by 함께평화 2013. 10. 22.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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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공부는 이렇게...

중국어를 가르쳐준 자원봉사자는 한국 역사와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인지 공부하는 날이면 숙제를 꼭 내준다..

세종대왕, 김구, 안중근, 윤봉길, 김옥균, 명성황후, 흥선대원군, 이승만, 박정희, 박근혜, 김대중, 노무현... 장동건, 배용준....그리고 강원도, 제주도, 경복궁... 등 역사적 인물과 대중연예인, 한국 지역과 문화 등을 망라하여 조사를 시키고 중국어로 정리하여 그에게 얘기를 하는 방식이다.

내가 중국어로 설명하면 그는 틀린 부분과 어색한 부분을 고쳐주고 수정하여 주고 자기가 들은 것을 다시 한번 내게 들려주는 식으로 공부가 진행되었다.

이렇게 하다보니 자연스레 중국어 좀 늘고(물론 아직도 초보에서 못벗어났지만..) 또한 우리 역사에 대해서도 다시한번 공부하는 기회가 되었다.

 

우리나라와 밀접했었던 .. 상해

조사를 하면서 상해가 우리나라 역사와 참 많이 연관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도 대한민국임시정부 유적지나, 홍커우(지금은 루쉰공원)공원 등이 남아 있기도 하고, 김구 선생이나 윤봉길 의사의 상해에서의 활동이야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김옥균이 상해에서 살해되었다는 것....

 

여하튼 나에게 과제를 내주기 위하여 그는 아마도 나보다 더 많이 한국역사를 미리 알아봤어야 했을 것이다. 이래저래 그에게 감사하고 고맙게 생각한다.

 

그런 그가 그동안 한국역사에 대하여 많이 공부하고 배웠으니 나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중국 역사에 대하여 알려 주겠다하여 같이 가게 된 곳이 바로  중국의 국부로 추앙받고 있는 '손문이 상해에서 머물렀었던 집(孙中山故居)'을 방문하게 되었다.

 

손문( 孙文)

 

쑨원(손문, 孙文, 별명은 중산(中山), 1866년 11월 12일 ~ 1925년 3월 12일)은 외과 의사이자 정치가, 혁명가, 사상가이다.

손문은 중화민국과 국민당의 창지사로서 중국 근대 민주주의 혁명의 선봉자라고 할 수 있으며 국민당이건 공산당이건 모두가 그를 존경하고 있다고 한다.

 

상해시 향산로 7호의 손문의 옛집은 캐나다의 화교가 유럽식을 지어 손문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한다. 그는 그곳에서 그의 부인과 함께 1818년부터 살았으며 비록 그가 1925년 죽게 되었지만 그의 부인은 1937년까지 살았다고 한다.

 

손문은 우리에게  "민족, 민권, 민생" 의 삼민주의를 주창한 사람으로 잘 알려졌다.

1911년 신해혁명을 일어나고 손문은 1912년 중화민국 임시대총통이 되었다. 그리고 그는 1919년에 '중국 국민당'을 결성하였다. 1924년 국민당 대회에서 제1차 국공합작을 실현, 북상선언과 국민혁명을 제창, 국민회를 주장했으나 1925년 베이징에서 안타깝게도 병사하였고 그의 묘는 난징에 있다. 

 

손문은 한국의 독립 운동에 많은 지원을 하였고 대한민국 임시 정부 창립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이러한 공로로 1962년과 1968년 두 차례에 걸쳐 건국훈장 중장이 추서되었다고 한다.

 

손문의 옛집안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제대로 찍지는 못했지만...

소박하고 검소하게 살아간 그의 삶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손문의 활동을 찬찬히 보면서 정치가로서 지도자로서 어떠한 마음과 자질을 가지고 국민들을 위하고, 나라를 세워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의 온화한 모습이 마음 속에 남는다..

 

 

 

 

 

 

 

 

 

 

관리자가 계속 따라 붙어..내부는 찍지 못하고 팜플렡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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