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YMCA60년사- 선배들의 회고

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춘천YMCA60년사- 선배들의 회고

평화/Y

by 함께평화 2011. 8. 10. 07:30

본문

728x90
SMALL

춘천YMCA와 나
- 남궁 철 前 이사

 

 

‘YMCA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前 강원일보 주필이자 YMCA이사, 국제 와이즈멘 베타클럽 회원, 춘천YMCA가 설립한 특수교회 다락방 멤버이신 남궁 철 님의 답변은 기독교의 설명에서 이어졌다. 6․25피난시절 어린 동생을 대동하고 남하하다가 인민군에게 포로로 잡혀 총살장으로 끌려가는 도중에 집행 한 발 앞에서 기도나 하고 죽게 해달라고 하자, “어렵잖다”며 하라고 하여 기도를 하였다 한다. 그때 아래에 있던 인민군 장교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총살중지를 명하며, 내려 보내라 하여 뜻밖으로 위험 고비를 넘기고, 교인 집안인 듯한 장교가 성경구절, 찬송가를 묻는데 나도 모르게 술술 나와서 살아나게 되었다.

부산까지 피난이 어려워 형제들과 헤어져 훗날 만날 것을 기약하고 고생한 일, 겨우 부산에 도착하여 힘들게 만난 형제 상봉, 교회를 찾아가 하룻밤 묵을 것을 요청했지만 단호히 거절당하고 참담했던 교회에 대한 아픈 기억으로 이어졌다. 이런 와중에도 하나님은 한 천사를 보내어, 자기를 따라 오라고 하여 따라간 곳이 부산YMCA별관 건물이었다. 불편하더라도 좀 참으라면서 음식과 이불을 구해주며 당시 꺼져가는 희망에 불씨를 붙여준 YMCA직원인 듯한 그 청년을 잊을 수가 없다고, 그 후 찾아보려고 했지만 북새통과 수복 후의 복잡한 사회 환경이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한다.

춘천에 정착하여 강원일보 기자부터 주필이 되어 춘천YMCA와 한 가족 같은 관계를 맺게 되었다. 자체 건물도 없던 시절 김홍규 총무와 머리 맞대고 어려움을 의논했고 와이즈멘 클럽을 만들고 YMCA와 와이즈멘이 일취월장 발전됨을 보며, 비종교인 지역 지도자들과 주일 아침마다 예배드리고 담배도 피우며 커피타임을 가지고 지역현안을 토론하던 다락방 활동, 바로 여기서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교회에 다니면서 세례를 받고 장로가 된 분들이 여럿이었다고 했다. 당시 회관 건립을 위한 모금 활동과 회원 확장 운동에 동참했던 일, 전국 2, 3번째로 우람한 자체 YMCA건물을 완성하고 기뻤던 마음 모두가 하나님 은혜이며, 김 총무님을 위시한 그 주위 열렬한 분들이 열성과 관심이 배어 있는 춘천YMCA를 결코 잊을 수 없단다.

마지막으로 60년 역사를 회고하면서 인생은 육십부터라고 했듯이 다시금 도약하는 YMCA를 기대한다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윤건배 前 이사장

- 2008년 4월 16일 수요일

 

강원일보 강표원 씨가 이사장이었던 시절, 윤건배 이사장님은 1980년대 부이사장이셨다. 그 당시에 김홍규 총무와 함께 히로시마, 오사카, 동경을 다녀왔고, 열흘의 시간이 걸렸다. 또한, 필리핀(마카티YMCA)에서 필리핀 사람이 축사를 읽는데 당당하였고, 우리도 한국말로 당당하게 축사를 읽었다. 총회로 인해 필리핀 바기오라는 곳을 다녀왔고, 자매결연 맺고, 서명을 했다. 그러므로 대만, 일본, 필리핀 이 세 곳에서 자매결연 맺었다.

이사장님은 봉사로 처음 YMCA를 시작하셨고, 그 다음엔 회원, 부이사장, 사장으로 일하게 되셨다. 마지막으로 그 시절, Y역사를 기록하지 않아서 지금 이 시대에 YMCA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함을 느낀다. 기록을 남겨서 후배들이 계속해서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석진 前 이사

- 2008. 4. 23.


며칠 전 장 박사님이 잘 가시던 회경루(중국집)에 들렀더니 중국 본토인인 주인아주머니가 장 박사님 안부를 물었다. 가슴이 넓고 훌륭하신 분이라며, 어려운 사람은 무료로 진료해주시고 좋은 일도 많이 하셨단다. 장 박사님 뵈러 갈 거라니깐 안부 인사를 부탁했다.

60년사에 게재할 인터뷰 기사와 카메라를 매고 흑석동 중앙대 병원 특실을 찾았다. 반갑게 악수를 청하시며 맞아주셔서 너무도 감사했는데, 알고 보니 사실은 몰라보시면서 예의상 반가운 척 표현한 것이었다. YMCA이야기, 다락방예배, 국제 와이즈멘 알파클럽 하며 제가 가끔씩 만나서 말벗도 되어드리고 중국집에서 튀김을 같이 즐기던 백형기라고 손을 주물러 드리고 약 1시간, 옛 기억이 돌아오셔서 내 이름을 정확히 말씀하시며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발음도 분명치 않은 힘든 말문을 여셨다.

몇 년 전만 해도 귀가 조금 어두우셔서 큰소리로, 아는 사람만 만나면 잡아놓고 1시간씩 하시던 그 말씀, 다 사라지고 고개 들기도 힘들어 하시는 분을, 바로 앉혀드리며 춘천YMCA 60년사에 게재할거라고 3~4가지를 적어드리니 웃으시며 감사하다고, YMCA하면 왜 안 나오시나 했는데 김홍규 총무 안부를 물으셨다. 장 박사님과 비슷하다니깐 씁쓸한 표정을 지으셨다. 기억이 되살아나셔서 YMCA 잘 되냐고? 네! 이제 활발히 옛 명성을 회복했습니다, 하니 힘없이, 그래도 웃음 띠시며 고개를 약간 끄덕이신다.

YMCA가 잘돼야 사회가 성숙해지고 발전한다고 YMCA의 발전을 기원한다고 적으라신다. 말씀이 힘들고, 힘들여 하셔서 종이에다가 큰 글씨로 ‘장박사님! 사랑합니다. 먼저 가신 권사님과 YMCA가족들이 박사님의 평강을 기원 드려요, 춘천에서 들리는 소문은 장 박사님이 예쁜 간병인 아주머니만 좋아하시고, 그분 말만 잘 듣는다고 다들 아는데, 간병인 아주머니 말씀 잘 들으세요. 약도 잡수라 하면 고개 젓지 마시고 잘 잡수세요. 오늘 사진 찍은 건 역사서에 실을 겁니다. 편안히 강건하세요. 박사님! 사랑해요. 춘천YMCA 백형기 드림’이라고 써서 보여드렸다. 그러니 두 손으로 받쳐 들고 한참을 보시더니 침대옆 벽에 붙이라고 하셔서, 예쁜 간병인 아주머니와 테이프로 붙여드리니 기쁜 얼굴로 웃으셨다. 약 2시간 가량 있다가 기도드리니 “ 아멘, 아멘” 하시며 문 앞까지 전송하신다고 간병인 손을 잡고 겨우 발걸음 띄며, 악수를 두 번, 세 번 청하셔서 꼭 잡아드리고 고개 숙여 인사드렸다. 장석진 박사님! 장석진 이사장님! 사랑합니다.

장석진 박사 - 30여 년간 YMCA이사로, 이사장으로 회원모집운동, 봉사활동 국제 와이즈멘 알파클럽 회장으로 열성적으로 활동하시며 춘천YMCA사업이라면 팔 걷어 부치시고 앞장을 서신 분이다. YMCA 김홍규 총무님의 약간 비판적 시각이나 이야기가 나오면 누구보다 먼저 대변인 역으로, 방패 역을 마다하지 않으셨던 분, YMCA가족이 간사가 점심때나 저녁때 보이면 절대 그냥 입으로 보내지 않으시던 분이다.

10여 년간 장외과, 춘천관광호텔 반경 50m 골목골목을 한밤중과 새벽에 1~2시간씩 빗자루로 쓸기도 하시고, 작은 담배꽁초 모두 주워서 버리시며 “내 집 주위는 내가 쓸고 닦는다”고 하셨다. 본인이(백형기) 6년간 MBC ‘별이 빛나는 밤에’ 출연했을 때, 이 소식을 “낙원동 페스탈로치 장 박사님을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방송으로 소개했는데…. 이 소식을 들으시고, 일부러 불러서 자장면까지 사 주시던 다정다감하신 분, 바로 장석진 박사님, 이분이다.

특실에서 외로이 계시지만 옛 봉사실적, 많은 사람을 도와주신 역전의 용사임이 틀림 없으셨고 환자 기록 팻말에는 주치의가 장인택 박사, 장 박사님의 큰 아들이 주치의라고 적혀 있었다. 큰 아들의 효과적인 의술과 예쁜 간병인의 정성스런 간호와 수발, 그래도 그렇게 쓸쓸히 여려지진 않았다. 춘천YMCA의 큰 힘이 되시던, 한 팔 역할을 하시던 로터리의 오 박사님, Y건축 위원장 겸 두 번 이사장을 역임하신 강원일보사 강표원 사장님, 강원의 양심 한석웅 前 이사장님, 이분들은 하늘나라에서 보고들 계시겠지, 이제 한평생을 정리하시며 윤건배 前 이사장님이 춘천요양병원에 계시고, 흑석동 중앙대 병원에 장석진 이사장님, 창립 때 YMCA직인을 주머니에 넣고 김홍규 총무님이 가시는 데가 YMCA 임시 사무실이던 - 역전의 용사들이 유구한 영권의 인생역사를 기록하고 계시니 “고작 칠십 생애의 희로애락을 싣고 각축하다가 한 움큼의 부토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 생각하니 의지 없는 나그네 마음은 암연히 수수롭다”던 정비석의 글귀가 생각난다.

 

지도자 워크숍

청년대회

농촌봉사활동

농촌봉사활동

728x90
LIST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